예수의 눈빛, 연민인가 증오인가… 관객의 시각을 묻다
가슴이 먹먹하고 머리가 띵했다. 공연은 끝났지만, 아무도 자리에서 바로 일어서지 않았다. 충격과 감동에 다들 잠시 멍했다가 기립 박수가 터졌다.
아방가르드 연극의 대가, 로메오 카스텔루치(53)가 페스티벌 봄에 가져온 '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얼굴의 컨셉에 관하여'는 그렇게 관객을 사로잡았다. 페스티벌 봄은 현대예술의 전 장르에서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작품들로 벌이는 축제다. '신의 아들을…'은 22, 23일 서울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올라갔다.
카스텔루치는 대담한 질문과 강렬한 이미지로 가득찬 이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했다. 23일 공연 후 만난 그는 "해석은 관객의 몫"이라며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는 것, 좋은 문제를 창조해 내는 것이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대는 단순하다. 예수의 대형 초상화가 배경으로 걸려 있고, 그 앞에 소파와 TV, 타자, 의자, 침대가 좌우로 길게 놓여 있다. 바닥도 가구도 온통 하얀 색이다.
늙고 쇠약한 아버지는 계속해서 똥을 지린다. 아들은 그때마다 노인의 기저귀를 갈고 정성껏 몸을 닦아준다. 아버지는 수치심에 운다. '미안하다'를 연발하면서. 아들은 '괜찮다'고 달래며 치우고 또 치우다가 마침내 폭발한다. 예수의 초상화로 달려가 몸을 부비며 소리 없이 절규한다. 하지만 예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고통스런 비극과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을. 어둠 속에서 공 튀기는 소리가 들린다.
아들이 퇴장하고 농구공을 든 아이가 나온다. 초상화를 바라보다가 가방에서 수류탄을 꺼내 던지기 시작한다. 다른 아이들이 줄줄이 나와 수류탄을 던진다. 이 격렬한 항의에도 예수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폭발음이 잦아들고 아이들이 물러가자 홀로 침대에 앉아 있던 노인이 일어나 통에 든 똥물을 질질 흘리며 예수의 초상화 뒤로 사라진다.
이제 예수만 남았다. 그림이 그려진 천 뒤에서 그림을 이리저리 휘젓는 사람 그림자가 비친다. 초상화가 일그러진다. 예수의 얼굴에 오물이 흘러내린다. 뭔가 긁히고 찢기고 깨지는 굉음이 들리면서 초상화가 찢어진다. 찢긴 천 틈으로, 어둠 속에서 불타듯 선명하게 글자가 떠오른다. "You are my shepard", '주는 나의 목자이시니'라는 문장이다. 그 순간, 객석 여기저기서 "아!" 하는 탄식이 들렸다. 그게 끝이 아니다. 또 다른 단어, 'not'가 희미하게 나타나 앞의 문장을 "You are not my shepard"로 수정한다. 그리고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침묵하는 신에 대한 항변에서 신앙 고백으로, 다시 회의로 진행된 60분간의 연극은 그렇게 끝났다.
2011년 독일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지난해 프랑스 공연 당시 가톨릭 근본주의자들로부터신성모독이라는 규탄을 받기도 했다. 그들은 공연장 난입을 시도하고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카스텔루치는 "작품을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부당한 비난을 퍼뜨렸다"고 설명하면서 "선거를 앞두고 극우파들이 정치적 의도로 일으킨 소동"이라고 말했다.
'주는 나의 목자이시니'에 이를 부정하는 not이 들어간 까닭은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과 신의 충돌, 갈등을 표현하고 싶었다. 양가성(兩價性)을 보여주고자 했다. 믿음의 기초는 의심이 아닌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예수의 초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는 관객을 응시한다. 그의 부드럽고 고요한 눈길은 연민처럼 느껴지지만, 인간의 비참함과 고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는 점에서 무자비하기도 하다. 카스텔루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관객의 몫을 강조했다.
"초상화 속 예수의 눈길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 연민일 수도 있지만, 분노나 증오가 될 수도 있는 눈빛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이다. 강렬한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선동하려는 의도는 없다. 수수께끼 같고 꿈 같은 모호한 이미지가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관객들 내면에 가지고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내기 위한 장치다. 이를 통해 관객을 각성시키는 것, 다시 말해 인생의 여러 측면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고 싶다."
그의 연극은 관객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내면에 파도를 일으킨다. 이번 작품은 격랑이었다.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많았다. 신의 아들의 눈길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화인(火印)으로 남았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