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탐욕·복수 드라마가 유행하는 사회

입력
2013.03.26 12:06
0 0

드라마는 허구다. 원작인 만화도 그렇다. 사실이 아니니 멋대로 상상하고, 생략하고, 비약해도 그만이다. 은 엉성한 수법으로 살인을 마구 저지르고도 들키지 않고, 대통령 선거를 초등학교 반장 뽑는 것쯤으로 여긴다. 한 여자의 상투적인 협박 한마디에 재벌총수가 수십억 원을 내놓고, 정치인들이 무릎을 꿇는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가 쌍둥이 형제를 구분 못하고, 경찰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범인을 잡지 못해도 그만이다.

은 어떤가. 검찰은 바보이고, 썩어빠진 집단이다. 총장까지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인간이 하루아침에 아무런 검증도 없이 검찰 수장이 되었다는 것부터가 황당하다. 공범들인 검사와 방송기자, 변호사, 여배우 출신의 사업가의 존재와 행동도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허구라고 하지만 이렇게 개연성을 마구 무시하고 단순화하고 과장하는 '막장드라마'인 셈이다. 얽히고 설킨 가족의 출생비밀, 근친상간을 연상케 하는 애정행각을 그리는 드라마도 막장이다. 이런 드라마들은 자극성이 강해 시청자의 관심을 끌지만, 욕을 먹는다. 과 은 다르다. 극단적 상황 설정과 단순한 구성의 반복, 엉성한 플롯과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무엇'이 있다는 얘기다. 세상에 이유 없는 '인기'란 없다.

그'무엇'은 다름 아닌 주제에 소재에 있을 것이다. 탐욕과 복수다. 여기에서 탐욕은 돈과 권력이고, 복수는 그 때문에 억울하게 희생된 자의 은밀하고도 처절한 사적 처벌을 통한 정의다. 에서 팜므파탈(악녀)인 주다해(수애)는 신분상승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과 권력을 좇는다. 재벌2세와 결혼하기 위해 가난한 남편 하류(권상우)와 어린 딸을 버린 것도 모자라 죽게까지 만든다. 자신의 과거가 들통나자 이번에는 재벌2세를 죽이고 그의 가족을 협박해 받아낸 거액의 정치자금으로 선거에 뛰어들어 대통령의 아내가 되려고 발버둥친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온갖 반인륜적인 악행이 하류, 나아가 시청자들의 복수심을 더욱 자극한다. 에서 돈의 노예가 된 지세광(박상민)도 비슷하다. 정의의 탈을 쓰고 비뚤어진 복수심과 탐욕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그 집착이 심할수록 시청자들은 그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와 살인죄를 뒤집어쓴 어머니를 대신해 치밀한 복수극을 전개하는 이차돈(강지환)과 한마음(감정이입)이 된다.

탐욕은 인간 본능이다. 필립 지강테스는 에서 탐욕과 이기심은 인간 생존과 번영에 필요한 요소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적당'과 '최소한'이란 전제가 필요하다. 하류와 이차돈의 복수는 타인을 억울하게 만들고, 도덕과 정의를 무너뜨리고, 오로지 자기만의 권력과 부를 향한 탐욕에 대한 응징이다. 탐욕이 극단적일수록 복수의 카타르시스도 그만큼 크다.

시청자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막장 드라마에 공감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성에 있다. 아직도 우리사회에 그만큼 이런 '드라마 같은 현실' '허구 같은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과 이 비록 허구이기는 하지만 사실에 바탕을 둔 '그럴듯한 허구'로 받아들인다. 온갖 탈법과 편법으로 부를 챙긴 것도 모자라 거짓말을 하면서 권력까지 넘보다 망신당한 사람들. 탐욕에 눈이 멀어 성접대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이야말로 막장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사적 복수도 법과 제도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제대로 풀어주지 못하는 한 여전히 카타르시스의 중요한 재료가 된다. 그런 점에서 과 은 황당한 막장드라마가 아니라,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자 통렬한 풍자다. 지금 탐욕과 복수의 막장드라마가 유행하고,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