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고위공무원 등 고액의 공적연금을 받는 '부자 노인'들로부터 건강보험료를 징수하려던 정부 시책이 정작 각 부처 고위관료들의 비협조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6월 입법예고한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개정안' 얘기다. 개정안은 연간 연금소득 4,000만원을 초과하는 공무원과 군인, 사학연금 수령자 가운데 직장인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를 내지 않던 사람들에게 앞으론 1인당 월평균 18만4,000원의 건보료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이다.
개정안 입법예고 당시 해당자는 전직 고위공무원과 군 장성, 교수 등 약 2만2,000명으로 전체 공적연금 수령자 중 4.7%를 차지했다. 하지만 개정안 시행은 그 때부터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됐다. 보건복지부부터 각 부처와 고위관료들의 반발에 당초 지난해 9월로 예정됐던 개정안 시행을 올해 초로 미뤘다. 규제개혁위원회는 한 술 더 떠 개정안 심의조차 끝없이 지연시켰다. 전 복지부 장관이 총리실에 직접 항의까지 했지만 "부처 합의가 미흡하다"느니,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느니 하면서 처리를 회피했다.
한국일보 보도(26일자 10면)에 따르면 개정안 표류는 결국 앞으로 고액 연금을 받게 될 현재 고위직들의 이해 때문이다. 국방부는 퇴직 장성들을 의식한 듯 "공식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했고, 규개위의 한 위원은 "나도 당사자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실토했다고 한다. "재직 중 월급에서 건보료를 냈는데, 월급에서 뗀 연금에 건보료를 물리는 건 이중과세"라는 항변도 나온다. 하지만 이 모든 이견과 비협조가 전ㆍ현직 고위직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여곡절 끝에 개정안이 오는 29일 규개위 회의 안건에 올랐지만 반대 분위기가 강해 통과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재직 중 능력에 걸맞은 명예와 권력, 고임금과 훈ㆍ포장을 누린 고위직들만의 이익을 위해 복지비용 분담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혁이 좌절된다면 국민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규개위는 박근혜 정부의 공정경제 의지를 걸고 개정안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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