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25일 해외 비자금 계좌 운용 의혹 등으로 사퇴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부터 단행한 장ㆍ차관급 고위직 낙마자는 6명으로 늘었다. 인사 홍역을 겪었던 이명박정부에서 취임 전후 3명의 장관이 낙마했던 것과 비교하면 갑절 수준이다. 청와대 비서관 교체까지 포함한 인사 사고는 12건으로 박근혜정부의 인사검증 라인 문책과 인사 시스템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첫 고위직 낙마자는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사퇴한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이다. 인사검증의 기본인 부동산 투기 의혹과 두 아들 병역 의혹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탓이었다. 새 정부 들어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4일 사퇴한 뒤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18일) 김학의 법무부차관(21일)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22일) 한 위원장 후보자(25일)가 잇따라 물러났다.
인사 사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인수위 시절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거론되던 최대석 외교국방통일분과 인수위원이 중도하차했고, 새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홍보기획ㆍ사회안전ㆍ법무ㆍ보건복지ㆍ여성가족 비서관 등 청와대 비서관 5명도 교체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교감 속에 이명박정부 때 지명됐다가 낙마한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까지 포함하면 인사 사고는 총 13건에 이른다.
인사 사고의 원인은 박 대통령 특유의 하향식 인사스타일과 검증라인의 크로스체킹 부재ㆍ혼선,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인적 구성 한계 등 복합적 요소에서 찾을 수 있다. 일단 박 대통령이 해당 인사를 사실상 낙점한 뒤에야 인사위원회 등에 검증을 맡기는 상명하달식 인선 구조가 화를 키운 측면이 있다. 낙마자 중에는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맡을 인사들이 유독 많다. 박 대통령은 눈 여겨 봐왔던 인사들을 관련 직책에 단수로 추천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사권자가 자신의 구상을 실현시킬 적임자를 직접 낙점한 뒤 검증을 시키는데 '부적격'이라고 말하긴 힘든 게 사실이다.
실제 해외계좌, 주식백지신탁, 유관 기관 근무 등 낙마 사유 대부분이 검증의 'ABC'에 해당된다. 이에 따라 "걸러내지 못한 게 아니라 어지간하면 되는 방향으로 검증을 진행한 게 아니냐" "과연 검증을 하긴 한 것이냐" 등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형 로펌 출신의 공정거래위원장' '성접대 의혹 풍문에 연루된 법무차관' 등 국민 눈높이에서 결격 사유를 가진 인사들이 줄줄이 검증을 통과했다. 인선 발표 하루 전에야 신원조회 동의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황 내정자 사례에서 보듯이 박 대통령이 충분한 검증 시간을 보장해 주는지도 의문이다.
한 후보자와 김 차관, 황 내정자는 박 대통령 취임 후 인선된 만큼 검증라인의 능력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곽상도 민정수석은 박 대통령의 대선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으로 박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대구 달성군이 관할인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을 역임했다. 대통령 의중을 잘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검증라인 핵심을 맡기엔 중립적이지 못한 인사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인사위원장인 허태열 비서실장과 곽 수석이 성균관대 동문인 점도 검증 과정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지 못하도록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친박계 출신 등 박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로 대부분 채워진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검증 과정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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