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시비가 불거지면서 인사청문회 일정조차 잡지 못했던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25일 결국 낙마했다. 모양새는 자진사퇴였지만, 수십억원대 해외 비자금 계좌 운용 사실이 드러나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도 지난주에 관련 사실을 파악한 뒤 "더 이상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한 후보자가 이날 전격적으로 사퇴를 발표한 데에는 해외에 수십억원대의 비자금 계좌를 운용하면서 수억원대의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 제기가 결정적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한 후보자가 2006~2010년 발생한 종합소득세 1억7,000여만원을 2011년 7월에야 납부한 것을 두고 국세청의 해외자산 자진신고 제도 도입에 따라 20억~30억원 규모의 해외 비자금 계좌를 신고한 뒤 뒤늦게 납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은 "국세청에 한 후보자의 해외 금융계좌 신고 여부, 계좌의 규모와 개설 시점 및 개설 국가 등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며 "의혹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해온 지하경제 양성화 등 조세정의 확립 기조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청와대는 지난주에 이미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내정 철회 쪽으로 거의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민정수석실에서 지난 22일쯤 대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이후 사퇴시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부실 검증 논란을 의식한 듯 "한 후보자 내정 당시엔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지 않아 인사위원회를 설치할 수 없었지만 그에 준하는 검증 활동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 후보자의 사퇴 발표가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에 따른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공식적인 협의나 상의는 없었다"며 "의혹이 제기되고 취재가 시작되니까 본인이 결심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관계자는 "24일 저녁부터 청와대 내부에서 의혹이 사실이고 사퇴할 것 같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전했다.
사실 한 후보자의 경우 국회 인사청문회 개최 자체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야당은 지난 14일 한 후보자가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부터 대형 로펌 근무 경력과 상습 탈루 의혹 등을 제기하며 줄곧 자진 사퇴를 촉구했고, 국회 정무위에서는 청문회 일정을 합의해 주지 않았다.
야당은 특히 한 후보자가 김앤장, 율촌 등 대형 로펌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면서 재벌 총수 일가의 편법 증여 관련 소송을 비롯해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온 이력에 대해 집중포화를 쏟아냈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관리ㆍ감독해야 할 '경제 검찰'의 수장으로서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한 후보자가 한양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할 때 규정을 어기고 변호사를 겸직하다가 교수직을 사임한 전력도 도마에 올랐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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