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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할머니의 샘표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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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할머니의 샘표간장

입력
2013.03.2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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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문자를 쳤다. 간장이 떨어졌으니 집에 오는 길에 한 병만 사다 달라고 했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무슨 간장을 사야 해? 종류가 많은데."나는 생각 없이 대답했다."샘표간장을 사다 줘."

전화를 끊고서야 남편이'샘표간장'의 뜻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말한 샘표간장이란, 샘표라는 브랜드의 간장이 아니라'조림용 양조간장'을 뜻한다. 이건 우리 할머니의 어휘다. 할머니는 언제나 간장을 지비간장(집간장)과 샘표간장으로 구분했다. 국 끓일 땐 집에서 메주를 띄워 만든 지비간장. 조리거나 볶을 땐 슈퍼에서 파는 샘표간장. 나는 간장의 어휘를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처음 자취를 시작하며 내 손으로 간장을 사러 갔을 때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한참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슈퍼에는 당연히 집간장 같은 게 없었고, 샘표간장에는 국간장, 조선간장, 양조간장, 진간장 등 종류가 많았다. 그때 나는 샘표 조선간장을 사서 계란후라이에 밥을 비벼먹었던가 어쨌던가.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할머니의 어휘를 슈퍼의 어휘로 번역할 수 있었다.

이제는 슈퍼 진열대의 간장들에 대해 꽤 안다. 청정원이나 해찬들의 간장도 사봤고 맛간장, 어간장, 해물간장 같은 것으로 음식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들어온 할머니의 간장 분류법은 여전히 입에 붙어 있다. 나는'샘표간장'으로 생선을 조리고'지비간장'으로 미역국을 끓인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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