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문자를 쳤다. 간장이 떨어졌으니 집에 오는 길에 한 병만 사다 달라고 했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무슨 간장을 사야 해? 종류가 많은데."나는 생각 없이 대답했다."샘표간장을 사다 줘."
전화를 끊고서야 남편이'샘표간장'의 뜻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말한 샘표간장이란, 샘표라는 브랜드의 간장이 아니라'조림용 양조간장'을 뜻한다. 이건 우리 할머니의 어휘다. 할머니는 언제나 간장을 지비간장(집간장)과 샘표간장으로 구분했다. 국 끓일 땐 집에서 메주를 띄워 만든 지비간장. 조리거나 볶을 땐 슈퍼에서 파는 샘표간장. 나는 간장의 어휘를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처음 자취를 시작하며 내 손으로 간장을 사러 갔을 때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한참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슈퍼에는 당연히 집간장 같은 게 없었고, 샘표간장에는 국간장, 조선간장, 양조간장, 진간장 등 종류가 많았다. 그때 나는 샘표 조선간장을 사서 계란후라이에 밥을 비벼먹었던가 어쨌던가.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할머니의 어휘를 슈퍼의 어휘로 번역할 수 있었다.
이제는 슈퍼 진열대의 간장들에 대해 꽤 안다. 청정원이나 해찬들의 간장도 사봤고 맛간장, 어간장, 해물간장 같은 것으로 음식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들어온 할머니의 간장 분류법은 여전히 입에 붙어 있다. 나는'샘표간장'으로 생선을 조리고'지비간장'으로 미역국을 끓인다.
신해욱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