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긴장해서 처음에는 공이 높았다."
상대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인 제이크 피비(32ㆍ시카고 화이트삭스)였다. 피비는 2007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시절 19승6패 2.54의 평균자책점으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받았다. 작년에는 야수들의 저조한 득점 지원에도 11승(12패ㆍ3.37)을 기록, 팀을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2위에 올려놓았다. 빅리그 '루키' 류현진(26ㆍLA 다저스)이 긴장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평정심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괴물'류현진은 자신의 연봉 600만 달러 보다 2배 많은 1,450만 달러를 받는 피비를 상대로 주눅들지 않았다. 경기 초반에만 흔들렸을 뿐 3회부터는 오히려 상대를 압도했다. 피비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화이트삭스의 팬들은 류현진의 배짱 투구에 감탄만 하고 돌아갔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진출 후 최고의 피칭을 보였다. 류현진은 24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캐멀백 랜치 스타디움에서 열린 화이트삭스와의 시범경기에 선발로 등판, 7이닝을 1안타 2볼넷 2실점으로 막고 10-4 승리를 이끌었다. 총 98개의 공을 던지면서 삼진은 5개 잡았고 직구와 체인지업, 커브와 슬라이더 등을 고루 던졌다.
시범경기 2승째다. 류현진은 앞선 등판인 18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 5.2이닝 3안타 1실점으로 첫 승을 따냈다. 시범경기 성적은 총 6경기(선발 5경기)에서 2승2패, 평균자책점은 3.86이다. 2경기 연속 호투와 함께 첫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3자책 이하)까지 기록하면서 무난히 선발로 시즌을 시작할 전망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에 이어 2선발로 활약할 공산도 크다.
출발은 불안했다. 1회부터 제구가 흔들리며 실점을 허용했다. 류현진은 선두타자 알프레도 데 아자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계속된 2사 3루에서 폭투로 첫 실점을 허용했다. 2회에는 선두 타자 5번 타일러 플라워스에게 중견수 방면 2루타를 맞았고 1사 후 7번 드웨인 와이스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더 내줬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3회부터 7회까지 거의 완벽했다. 유일한 출루는 4회 선두타자 제프 케핑거에게 내준 볼넷이었다. 3회를 공 9개로 가볍게 끝낸 류현진은 5회부터 7회까지 3연속 삼자범퇴로 퍼펙트 피칭을 보였다. 2개까지 38개에 달한 투구수도 효율적인 맞혀 잡는 피칭으로 3~7회에는 60개에 불과했다. 류현진은 9-2로 앞선 7회말 타석에서 대타 스킵 슈마커로 교체됐다.
이날 피칭은 3가지 의미가 있었다. 우선 선발로서 확실한 인상을 심어줬다. 그 동안 지적된 문제점은 타순이 한 바퀴 돈 뒤에 연속 안타를 맞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바퀴가 돈 다음에도 타자들을 손쉽게 요리했고, 투구수가 늘면 늘수록 칼날 같은 제구를 선보였다. 7회 주자를 남겨두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마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송재우 MBC SPORTS+ 해설위원은 "유리한 카운터에서의 주무기는 체인지업이었다. 하지만 틈틈이 던진 커브가 좋았다"면서 "국내에서 던질 때 보다 커브의 속도가 느려진 반면 각은 더 커졌다. 그 동안 예리한 맛은 없었는데 최근 경기에서는 커브를 효과적으로 던지며 좋은 투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구에 대한 자신감을 찾은 것도 고무적이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의 수많은 광속구 투수에 비하면 빠른 직구를 구사하는 투수가 아니다. 더 세게 던지기 위해 무리하게 힘을 주면서 공이 높이 뜨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은 왼손 타자를 상대로 바깥쪽 낮은 직구를 완벽하게 던지면서 유리한 카운터를 잡았다. 한 번 제구가 잡히니 3~7회까지 노히트노런 피칭을 할 수 있었다.
류현진은 경기 후 "모든 게 계획대로 되고 있다"며 2경기 연속 호투에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3회말 첫 타석에서 빅리그 데뷔 후 첫 안타(우전 안타)이자 이날 다저스의 첫 안타를 뽑아낸 것에 대해서는 "사이영상 수상자를 상대로 안타를 쳐내 흥분됐다"고 웃었다.
류현진은 29일 오전 11시5분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리는 LA 에인절스와의 시범경기에 마지막으로 등판한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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