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서 무슨 일이 있었나원세훈 부임후 부서장 회의 열어 종북 단체 척결·국정 홍보 지시●자료 내용 공개한 이유는지시 내용과 국정원녀 댓글 일치… 제보 신뢰할 수 있겠다 판단 내려●변호사로서 보람있었던 일은여성계 숙원이던 호주제 폐지 일조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
국정원은 어떤 조직인가. 국정원법에 따르면 국가를 지키기 위해 방첩과 테러, 내란과 외환의 위험을 감지하는 정보를 담당한다.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 기관. 그런데 지난해 대통령 선거 직전에 국정원 직원이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비판하고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인터넷 댓글을 달아온 것이 드러난 데 이어 최근에는 이것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뤄졌을지도 모른다는 자료가 나왔다. 원 전 국정원장은 2009년 2월 부임한 이래 한 달에 한 번 꼴로 부서장 회의를 가지면서 젊은 층의 여론을 바꾸기 위한 작업과 '종북좌파'단체와 정치인에 대한 대응, 정부의 국정운영을 홍보하는 일을 지시했다는 문건이 나왔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초선인 진선미(45)의원이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문건을 공개했다. 국정원은 젊은 층 우군화 방안은 비밀이라 밝힐 수 없고 '부서장 회의에서는 정치중립을 강조했다'고 대응함으로써 부서장 회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종북 좌파 단체로 규정된 민주노총 전교조 등이 원 전 원장을 고소했음에도 검찰은 수사를 미적대면서 의혹을 부풀렸다. 원세훈 전 원장의 행적은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24일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는 소문이 나자 이날 시민들이 인천공항에 모이면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여부는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진선미 의원을 22일 만났고 24일 오후 4시반에 인천공항에 가있는 그와 다시 통화를 나눴다.
-출국금지도 내려졌다는데 인천공항에는 왜 가셨어요?
"토요일 오전까지도 출국금지조치는 되어있지 않다고 확인이 됐는데 오후 5시쯤 TV조선에서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졌다 나왔어요. 그런데 국정원의 태도가 일관되게 거짓말로 내려왔기 때문에 보도내용이 사실인가 다각도로 확인을 했는데 어디에서도 확인해주지 않는 거지요. 국회 법사위를 통해 전달받은 법무부의 공식답변은 '공식적으로 수사중인 사안이라 상세하게 답변해드리지 못함을 양해바람'이었습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본다는 심정으로 왔어요. 오늘(24일) 미국행 비행기가 8편 있는데 마지막 비행기가 5시 10분이에요. 그걸 보고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 분 집에서 트럭이 짐을 실어 내갔다, 집에 사람 있는 기색이 없다, 그러니까 우리로서는 불안한 것이지요."
-미국에 가면 범인인도협정에 따라 곧바로 올 수 있지 않나요?
"그것도 어렵지요. 이것도 (국정원녀 댓글사건이 터진 후) 3개월만에 겨우 나온 것이고 국가기관 특성상 비밀이라서 입증되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가 얼마나 빨리 제대로 이뤄질 것이며 범인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범인인도요청까지 기다리다 보면 이 사건은 묻히는 거지요."
-그런데 국회의원이 검찰에 수사요청을 했는데도 지켜지지 않아서 이렇게 직접 공항을 지켜야 합니까?
"행정부를 견제한다는 기능으로 보면 국회의원의 권한이 너무 약해요. 국회의원은 입법을 통해서 압박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여당이 다수당이면 야당의 생각을 정책으로 입안하고 입법화로 완결시키는 데는 무력감이 많이 들더라고요. 자료제출 해달라는 요구도 잘 안들어주고요. 다행히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많이 모였고 언론사들도 많이 나와서 보도를 해주니 수사가 본격화되길 기대해봅니다."
-이미 다른 국제공항을 통해 나갔을 가능성은 없나요?
"정보기관의 수장을 했던 사람이 그렇게까지 나가려고 했다면 고이 보내드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하하"
-국정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에요?
"작년 12월 11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다는 불법선거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가 민주당으로 들어왔잖아요. '국정원녀 댓글사건'으로 알려진 그 사건에 대해서 경찰이나 선관위가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았어요. 가장 중요한 대선국면인 12월 16일 일요일 밤 11시에 매우 불완전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끝났어요. 17일 18일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인권변호사이기도 한 문(재인)후보님이 가녀린 여자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전면적인 공격을 당했어요. 인권유린하면서까지 선거 이기려는 추악한 모습으로 각인이 되었잖아요. 저를 포함해서 당시 현장에 갔던 의원들은 모두 불법감금죄라는 폭처법(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의 대상이 됐어요.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서 검찰 경찰의 수사를 독려했지만 계속 지지부진이 된 상태였어요. 그런 과정에서 제보를 받았어요.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와 '국정원녀'로 알려진 여성분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댓글의 내용이 부합되는 것이었습니다. 정보위 소속 유인태 의원님실을 통해서 새 국정원장 후보자에게 국정원이 '젊은 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방안'을 논의했는지 부서장 회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질문했습니다. 비밀사항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에서 있긴 있다, 하긴 했다는 확증을 잡고 발표하게 된 것입니다. 국정원이 반박자료를 통해 '그건 업무사항으로 한 거고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장 말씀 내용을 공개했어요. 저희에게 또 내부제보자에게 국가기밀을 폭로했다 그러는데 국정원의 이런 대응은, 국정원장의 발언 자체가 국가기밀은 아니라는 뜻이죠."
-뭐가 제일 문제인가요?
"영향력이 큰 언론이 친여성향으로 그런 정보만 다뤄지는 상황에서 2010년의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인터넷 SNS같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미디어가 유일하게 공정성을 기대하는 역할을 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에까지 정보기관이 여론조작에 나섰다는 뜻이지요. 젊은 층이 자주 드나드는 곳을 파악하고 그곳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은 축소하고 도움되는 내용은 확대하는 심리전을 펼친 게 아닌가 싶어요. 4대강사업 세종시 한미FTA 같은 정치현안에 대해서 정부 편을 노골적으로 들어서 국민들이 자기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현안들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걸 막았습니다. 자기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근간이잖아요. 국가의 정보기관이 나서서 정보를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한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흐트러뜨리는 일입니다. 이건 내란죄다, 국가의 뿌리를 흔드는 엄청난 일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다양한 계층들의 다양한 입장들을 반영해서 정부에 실책을 비판하고자 만들어진 합법적인 단체들에 종북이라는 멍에를 씌워서 설득력을 잃게 만들었어요. 정치인이나 사회단체가 국민들을 설득해서 옳다는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하잖아요. 그런데 종북이라는 말을 붙여서 국민들이 그 사람 말을 안 믿게 만드는 것이지요."
-진선미 의원은 종북의원 딱지 붙었습니까?
"문건에는 '이번 4.11 총선을 통해 종북성향을 가진 다수의 의원들이 대거 진출했다' 고만 되어 있고 이름이 적시되진 않았어요. 그래서 더 무섭다는 거지요. 비판만 하면 그런 성향 아니야?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만들려는 거지요. 그런 용어는 누구에게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이 분들이 '종북'이라는 개념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요. 정부 비판도 북한의 동조세력들을 확인하기 위해서 한 거라고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정치개입이 분명한데도 마치 자기들의 업무의 영역이라고 왜곡시키기 위해서는 그 개념이 딱 매개체가 되는 거지요. 검찰 경찰은 국회의 감시라도 받아요.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조차 비밀인데 어떻게 감시가 되겠어요.""
-성균관대학이 꽤 운동권이 셌는데 종북 성향 운동권은 아니었어요?(웃음)
"저는 연애권이었어요. 하하하. 저희 아버지가 함경도 분이시고요. 한국전쟁 때 평양사범 1학년이었는데 국군이 올라왔을 때 정훈장교로 합류하셔서 내려오셨어요. 북한에 홀어머니를 두고 오셨다고 늘 그리워하셨어요. 제가 중3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왜 순창에 정착하셨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초대 문화원장도 하셨어요. 제가 종북이라고 한다면 우리 아버지가 자다가 벌떡 일어나시지 않을까요."
-국회의원도 수사를 강제할 방법은 없습니까?
"우리나라는 정말 행정부가 무소불위예요.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기에는 너무 힘이 없어요. 의욕적으로 제안했던 입법들은 다수결의 논리에 의해서 묶여있어요. 자료제출 요구가 저희가 할 수 있는 건데 많이들 거부하고요. 심지어는 제보를 받고 어느 청장한테 인사 문제를 제기하면 그 자리에서 내부제보자를 색출하라는 지시를 내려요.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께서는 또 국회의원이 제대로 하는 것 없으니 돈은 왜 받냐, 국회의원 수를 줄여라 그러시니까 행정부 견제가 더 힘들어요."
-어떻게 하면 입법부의 권위가 서겠어요?
"정치혁신안으로 저희가 내세우는 게 몇 가지 있어요. 국회예결위(예산결산위원회)를 상설화해서 예산심의를 1년 내내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행정부에 대한 감사권한을 국회가 가져야 해요. 지금 감사원에서 감사를 하는데 행정부 감사를 행정부에 속한 감사원에서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국회 자체에서 청문회를 통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감사권을 국회 쪽으로 옮겨 오는 방안도 논의해봤으면 좋겠어요."
-법대는 법조인이 되려고 갔나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5남매 중 막내딸로 자랐으니까 학교에서도 등록금도 싸고 집에서도 가까운 교대를 권하셨어요. 제일 큰 오빠(진봉헌 변호사 57)가 81년에 사법고시에서 시위전력 때문에 3차에서 떨어지고 쌍용에 근무할 때였거든요. 성적도 되고 사회과목 좋아하니까 법釉?가라고 권했어요. 오빠는 86년에 다시 사법고시를 쳐서 합격했어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왔지요. 그런데 변호사가 다른 직업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어요."
-변호사로 가장 보람차게 여기는 것은 뭐예요?
"당연히 호주제를 없앤 것이지요. 호주제라는 게 한 집안의가장을 가장 나이 많은 남자로 정하고 그 아래에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거잖아요. 이게 1999년에 시작해서 헌법 민법 바뀌고 가족제도까지 2008년에 완전히 끝났으니까 오래 걸린만큼 배운 게 많아요. 모든 일은 적정한 때와 다양한 요소들이 조합이 될 때 성과가 이뤄진다는 걸 깨닫게 되니까 느긋해지더라고요. 사실 해방 이후 여성계 큰 숙원사업이었는데 50년을 이루지 못하다가 그 결과까지 본 건 제가 복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정치를 한다면 뭘 이루고 싶었어요?
"사법개혁 문제, 소수자와 장애인을 위한 입법작업을 하고 싶었고요. 현재 경찰 소방인력의 처우를 개선하는 히어로법안을 입안해 놓았어요. 계약결혼이나 결혼제도 바깥에 소외되어 있는 분들의 보호를 강화하는 법안도 생각하고 있어요."
-실제로 결혼식은 올렸지만 혼인신고는 안하셨다고요.
"1998년 11월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몇 달간은 서로가 바빠서 혼인신고를 못했고 몇 달 뒤에 곧바로 호주제 폐지를 위한 소송인단에 참여했어요. 그러면서 호주제가 개선되면 혼인신고를 하자고 했는데 그게 이렇게 길지는 몰랐어요. 하하. 정치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혼인신고를 하는 것도 어색하고 그런 쪽의 사람들을 대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세훈 전 원장한테 한 말씀 하신다면.
"원장님, 저는 오늘 원장님과 맞닥뜨리지 않아서 너무 감사하고요. 제가 인천공항까지 와서 헛수고 한 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고요. 원장님께서 수년동안 국가안보의 최전선에 서있던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정정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만약에 본인의 주장처럼 아니라고 하면 정말 정정당당하게 정면 대응해서 항변하십시오."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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