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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전쟁은 더 참혹" 폭격에 다리 잃은 이라크 소녀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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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전쟁은 더 참혹" 폭격에 다리 잃은 이라크 소녀의 절규

입력
2013.03.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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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20일 미국과 영국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4월7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북동쪽 위성도시 사드르시티(당시 사담시티)의 외곽지역인 사바쿠소르에 살던 당시 12세 소녀 마르와 스히마리는 이 날을 잊지 못한다. 마르와는 이날 바그다드 함락을 위해 총공세를 펼친 연합군과 이를 저지하는 이라크군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날아온 포탄에 자신의 오른쪽 다리와 함께 8살 난 여동생을 잃었다.

2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오랜 기간 당뇨병을 앓아온 어머니를 부모로 둔 마르와에게 동생과 자신의 다리를 잃은 슬픔은 오히려 사치였다. 어머니와 나머지 동생 3명의 생계가 막막해 치료만 고집할 수 없던 그는 결국 이틀 만인 9일 병원을 나왔다. 바그다드는 이날 연합군에 함락됐다.

다리를 잃은 후부터 동생들 돌보기는 마르와의 몫이 됐다. 다니던 학교에 며칠 나가봤지만 어린 마음에 아이들의 놀림을 견딜 재간이 없었다. 마르와는 점점 집에서만 지내는 외톨이가 됐다. 마르와는 당시를 떠올리며 "내 인생이 끝났다고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말했다.

2004년 어느 날 마리와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이라크전이 부당하다고 느낀 유럽과 미국 시민들이 유니세프 등 국제단체의 도움을 받아 전쟁에서 다친 어린이들을 직접 만나고 치료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의 수혜자로 선정된 것이다. 마리와의 후견인은 독일 출신의 유명 언론인이자 정치인인 위르겐 토덴호퍼였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바그다드 함락 후부터 1년간 6차례나 이라크를 방문한 토덴호퍼에게 마르와는 이라크전의 산증인이었다. 토덴호퍼는 마르와와 어머니를 독일에 초청해 의족을 달아줬다. 마르와가 한창 자라는 나이여서 하나에 2만달러(2,200만원)나 하는 의족은 2008년까지 매년 새로 맞춰야 했다.

그러나 마르와에게 찾아온 평화는 여기까지였다. 마르와 가족에게 수년째 경제적 버팀목이 돼 주던 토덴호퍼의 경제적인 능력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마르와 가족에 대한 지원이 줄어든 것이다. 토덴호퍼는 2009년 1만달러(1,100만원) 들여 마르와의 사바쿠소르 고향집 인근에 새 집과 함께 마르와가 어머니와 함께 노점을 할 수 있는 키오스크를 마련해 줬다. 하지만 매번 물고기를 잡아주기 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려 했던 토덴호퍼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이슬람 교리가 지배하는 이라크 사회가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키오스크는 무용지물이 됐고, 마르와 가족은 이듬해인 2010년 새집을 팔아 이전에 살던 집으로 이사했다. 집을 판 돈으로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였다. 토덴호퍼는 "영화라면 마르와가 장애를 극복하고 사업에 성공해 독일로 나를 찾아와 추억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왔겠지만 현실은 냉정했다"고 말했다.

BBC방송은 이라크전 발발 10년을 맞아 12일 마르와의 집을 직접 찾았다. 예전 집으로 다시 온 마르와 가족은 현재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아직 10대인 남동생 두 명이 잡일을 해 벌어오는 일당과 큰 돈은 아니지만 토덴호퍼가 꾸준히 보내주는 기부금이 마르와 가족이 받는 소득의 전부다. 당뇨병 합병증을 앓던 어머니는 지난해 45세 나이로 숨졌다.

이라크전 발발 이전 어려운 환경에서도 즐겁게 동생들을 돌보면서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학업을 이어가던 12세 소녀 마르와는 지금은 전쟁의 상흔을 안고 가까스로 삶을 버텨내는 20대 초반의 어른이 됐다. 마르와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쟁은 10년 전에 끝났을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세상을 떠날 때 전쟁이 비로소 끝나는 것"이라며 평생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하는 자신을 안타까워했다.

토덴호퍼는 "전쟁을 주도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 화가로 활동하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중동 평화특사 임무를 맡기도 했다"며 "이들이 우아한 생활을 즐기는 동안 마르와는 사과 한 번 받지 못한 채 모든 걸 잃었다"고 말했다. 사담 후세인 독재 종식과 민주주의 확산, 대량살상무기(WMD) 제거 등 서방이 표면적으로 내세웠던 이라크전 목표가 실제로는 서방에 석유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마르와는 "예전보다 외출도 많이 한다"며 "동생들 때문에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마르와는 이어 "미국이 이라크에 전후 재건비용으로 500억달러를 사용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내가 실제 도움을 받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BBC방송은 마르와가 부상 당한 2003년 4월7일을 전후로 일주일간 사망한 이라크 민간인만 2,200여명이며, 중상을 입은 민간인은 최소 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라크전으로 한 순간에 인생이 바뀐 수만명의 사람들이 오늘도 비탄과 고통속에 마르와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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