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8월 1일~15일 낙동강 방어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마산에서 왜관에 이르는 서부 방어선에 유엔군을 배치하고 왜관에서 포항에 이르는 동부 방어선에는 한국군을 배치하였다."
국방부 홈페이지에 실린 한국전쟁 낙동강 전투에 관한 설명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건조한 서술을 걷어내고, 당시 전선의 한복판이나 언저리에서 전투를 감내해야 했던 사람들(비전투원 포함)에게 초점을 맞춰 전장을 들여다보면 다른 모습이 보일 것이다.
어쩌면 이 전투는 어느 꽃다운 청년에게는 가슴팍에 유탄을 맞고 짧은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마지막 삶의 공간이었을 것이며, 아들을 전쟁에 보낸 어느 어머니가 땅을 치며 가슴에 자식을 묻어야 했던 비극의 출발지였을 것이다. 아마도 엄마 뱃속에 있던 어떤 태아에게는 평생을 아버지 없는 유복자로 살아야 할 서러움을 잉태한 장소였을 것이고, 나라를 위해 몸바치겠다며 자원입대한 어느 병사에게 평생을 짊어져야 할 장애를 남긴 고난의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혹은 그곳엔 판단 착오나 공명심 때문에 무고한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은 무능한 지휘관이 있었을 것이며, 공포에 사로잡혀 동료와 총검을 버리고 달아난 탈주병도 있었을 것이다. 오폭으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애먼 양민이 있었을지 모른다.
우연이든, 자의에 의해서든, 강요에 의해서든, 포연의 매캐한 냄새를 직접 경험한 이들에게는 역사책에 서술되지 않은 이런 모습이야말로 전쟁의 진면목이다.
20세기 최고의 전쟁사학자 존 키건(1934~2012)의 은 전쟁에 가장 배율 높은 돋보기를 들이대고 미시적 차원에서 전장의 모습을 완벽하게 복원한 역작이다. 영국인인 키건은 영국 역사 주요 전환점이 됐던 아쟁쿠르 전투(1415년) 워털루 전투(1815년) 솜 전투(1916년)를 선택해, 당시 지휘관의 판단 경위, 무기와 장비 수준, 말단 사병들의 육체적ㆍ심리적 상태, 전장의 날씨와 분위기 등 전투와 전쟁을 구성하는 각종 미시 변수를 분석했다.
이를테면 키건은 워털루 전투를 기술할 때 다른 전쟁사학자와 달리 나폴레옹과 웰링턴 공작의 라이벌 관계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신 전투를 치른 병사들이 거의 잠을 자지 못했고, 빵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고, 장교들이 제한된 시야와 정보 탓에 얼마나 우왕좌왕 해야 했는지, 심지어 일부 병사들이 전장의 소음(총소리, 포소리, 함성소리, 죽음의 아우성 등)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까지 참전군인 증언을 통해 복원해 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못지않은 사실감 넘치는 전장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이렇게 미시적 관점에서 접근할 때, 비로소 전투원이 감내해야만 했던 정신적 육체적 인간적 고통이 눈에 들어온다. 돋보기로 보이는 장군과 병사들은 결코 영웅적 모습이 아니다. 이긴 쪽이라고 해서 그 비참함의 정도가 다르지 않다.
키건은 '전쟁이 정치의 연속'이라 정의한 클라우제비츠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쟁을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전쟁의 인과 관계나 전쟁 전후의 권력 구도 같은 것들을 짐작할 수 있지만, 전쟁의 본질인 '인간'에 대한 고찰을 간과하게 된다. 대신 전쟁을 미시 차원에서 살펴보면 인간성의 갖가지 어두운 본질을 적나라하게 목격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선택할 수도 있는 수단'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피해가야 할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함부로 전쟁 가능성을 입에 올려선 안 될 것이다. 국민을 인간성 상실의 장으로 몰아넣지 않도록 사전에 전쟁 발발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일지 모른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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