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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살갗 같은 마음의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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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살갗 같은 마음의 보호

입력
2013.03.2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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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사물이든, 혹은 실재든 이미지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촉각적인 면이 있다. 이때 '촉각적'이라는 말은 실제 피부로 지각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유독 우리의 마음과 몸에 민감하게 느껴지고, 심정과 감각을 건드린다는 의미를 포괄한다. 또 다른 한편 각 존재의 여러 속성 중에 관념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이고 둔감하기보다는 예민한 측면을 가리킨다. 아마도 우리가 누군가를 섬세하다고 느낄 때, 무엇이 폐부를 찌른다고 말할 때, 어떤 순간이 자극적이라고 여길 때, 무엇에 감동 혹은 충격 받을 때 등등이 그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연약한 부분, 물건의 깨지기 쉬운 지점, 사건의 생생한 차원, 이미지의 선정적인 측면도 촉각적이라는 말에 걸릴 것이다.

이러니 문득 박찬욱 감독의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여주인공의 독특한 눈 화장이 떠오른다. 매화 잎이 덮인 것처럼 눈꺼풀 위로 진분홍빛 색조가 펼쳐진 그 화장은 우선 보는 이의 시선을 확 잡아채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 전편의 주제라 할 처절한 복수, 즉 자신이 받은 벌에 대한 대가를 법 바깥에서 사적 고문과 피 튀기는 폭력으로 되갚는 한 여자의 위태롭고 기괴하고 병적인 심리를 압축한다. 그 점이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흔들었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 광기 어린 시나리오에 옭아매진 인간, 폭주하는 맹수처럼 복수를 향해가는 인간의 헐벗은 상태를 진분홍 눈 화장을 통해 더듬으며 그 여자의 복수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새길 수 있었다. 단단한 외피 아래 숨겨진 문제의 본질은 그렇게 작은 조각으로도 드러나고 감지된다.

학교들마다 새로운 학년 및 학기를 시작하는 3월. 그렇게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지난 11일. 우리는 경북 경산의 한 고교 신입생이 중학교 때부터 이어진 동급생들의 폭행과 갈취에 시달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슬픈 뉴스를 들어야 했다. 그 학생이 남긴 유서에는 자신을 괴롭힌 이들의 이름과 죄과는 물론 학교폭력의 종류, 학교 내 CCTV가 폭력을 예방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까지 조목조목 지적돼 있었다. 그래서 그 유서는 어린 학생이 죽음 앞에서 비통하게 썼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가해자에 대한 고발만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풀지 못한 학교폭력에 대한 첨예한 문제제기로 읽혔다.

"주로 CCTV 없는 곳이나 사각지대. 있다고 해도 화질이 안 좋아 판별하기 어려운 데서 맞습니다…. 학교폭력은 폭력, 금품갈취, 언어폭력, 사이버폭력, 빵셔틀 등이 있는데, 내가 당한 것은 물리적 폭력, 조금이지만 금품갈취, 언어폭력 등등. 학교폭력을 없애려고 하면 CCTV를 더 좋은 걸로 설치하거나…" 이렇게 분석적이고 논리 정연한 유서 앞에서 한국사회 어른들, 특히 교육계의 나나 당신이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그 부끄러움과 죄책감으로 우리 자신을 채찍질하고 대책을 실천하는 일이 당연히 최우선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는 그처럼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쓰인 유서 아래서 우리가 그 아이의 몸이 느꼈을 통증, 마음의 피멍, 심리적 균열을 손으로 만지듯 지각하는 일이 또한 핵심이라 생각한다.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부터 일견 사건과 직접적 관련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익명의 네티즌들까지 말이다. '내가 아니'라고 죄를 은폐하기 전에, '가해학생 신상정보를 털어서 사회적으로 매장하자' 따위 보복성 댓글을 달기 전에,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자살한 남학생이 남긴 문장을 속 깊이 만져보자. 거기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부당한 폭력으로부터 어디서도 보호받지 못해 살갗이 벗겨진 것 같은 삶을 살았을 남자아이의 심정, 그럼에도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성적으로 학교폭력 실태와 해결점을 논하고 있는 그 어린 사회인의 마음결이다. 그것은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복수를 실행하면서 진분홍빛 화장으로 지우려 했던 인간다운 인간의 차원이다. 또한 그런 존재의 감각이다.

강수미 동덕여대 회화과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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