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본 태동 개화기 무대… 돈이 부른 탐욕·배반·복수선굵고 호방한 문체로 펼쳐전작들처럼 드라마 제작 확정
"어떤 이야기를 쓰면 잘 팔릴까, 그런 건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 내가 끌리는 소재를 우직하게 쓸 뿐이죠. 다만 영화, 드라마 쪽에서 제 작품을 반기는 걸 보면 기획의 촉이 좀 발달한 것 같긴 해요."
소설가 김탁환(45)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 스토리텔러다. 1996년 소설가로 데뷔한 이래 약 20편의 장편소설을 썼고, 그 중 상당수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돼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문학 전통에서 스토리텔러라는 표현이 상찬의 의미로만 쓰이지는 않는 것도 사실. 2011년 이야기원안 판매회사 '원탁'까지 만들었으니, 소위 본격문학 진영에서 본다면, 그에게는 스토리셀러(story seller)의 혐의까지 드리워진다.
"저는 인간을 '호모 나랜스', 이야기하는 존재로 봅니다. 이야기란 삶을 편집하는 기술이죠. 이야기가 문학의 본령인지 아닌지는 별 관심이 없어요. 다만 인간 존재의 본령일 뿐이죠."
그가 은행을 통해 독자적 민족자본을 형성하려는 개화기 조선인들과 이를 원천 봉쇄하려는 일제의 한 판 대결을 그린 세 권짜리 장편소설 (살림 발행)를 펴냈다. 당시 태동하기 시작한 민족금융자본의 힘겨운 분투를 다섯 젊은이의 사랑과 질투, 경쟁과 배반, 복수와 용서의 서사 속에 담은 장대한 소설이다.
"근대라는 것이, 특히 자본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탐구해보고 싶었어요. 돈 때문에 사람이 달라지는 모습, 새로운 욕망들, 그런 것들을 그리고 싶었죠." 자료 조사를 해보니 개화기 시기 회계장부와 일기 등이 남아 있었고, 개성상인 중 일부가 은행가로 변신한 케이스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미 당시에 돈을 벌려면 금융업으로 투신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들은 그렇게 탄생했다.
소설은 다음과 같은 매력적인 문장으로 시작된다. "다음 세상의 척도는 돈이라고 했다.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으나 기미를 알아차린 이들에겐 광야의 어둠이 두렵지 않았다." 소설의 중심 무대는 왕실과 대한제국 정부가 종자돈을 대고 상인들이 대거 참여해 만든, 실존했던 대한천일은행.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대한제국의 중앙은행 설립이라는 민족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젊은이들의 도전과 모험이 선 굵고 호방한 문체로 펼쳐진다.
김씨는 5년 전 인생의 승부수를 던졌다. 30대에 카이스트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쓴 그 수다한 장편들은 모두 습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산의 작가라는 말을 더 이상은 듣지 말아야겠다, 40대가 되면 10년간 필생의 장편 4편만 쓰자, 스스로 다짐했다.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해 마흔 되던 해 그 좋은 대학교수 자리를 스스로 그만뒀다.
"외부의 평가나 시선 같은 것보다는 제 독자가 저한테는 훨씬 중요해요. 제 독자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 그게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획의 눈이 밝은 김씨에게 많은 대중문화기획자들이 찾아와 40,50대에 어필할 만한 아이템이 뭐가 있을지를 묻는다. 이미 문화계의 판도를 좌우하는 세대는 20,30대 여성에서 40,50대 중년으로 넘어간 지 오래라는 것. "그런데 유독 소설만 이 40,50대를 외면하고 있어요. 한국소설에서는 40대 작가가 쓴 작품의 주인공도 10대 청소년입니다. 저부터도 내가 읽을 게 아니구나 싶을 때가 많죠."
의 강렬한 캐릭터들은 독자들에게 소개되기 앞서 발 빠른 드라마제작자들의 눈부터 사로잡았다. 영화화된 , 드라마로 만들어진 에 이어 이번 작품 도 브라운관 외출이 확정됐다. 대본은 '아이리스'를 쓴 김현준 작가와 '허준'을 쓴 최완규 작가가 맡았다.
마지막으로 영상예술을 질시하게 마련인 언어예술자로서 영화와 드라마를 어떻게 보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의 답변. "소설의 사이 좋은 형제들, 아우들이죠."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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