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오늘 공개변론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높은 형사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쨍한 촬영용 조명이 불을 밝힌 가운데 양승태 대법원장의 목소리가 정적을 가른다. 평소 검사 및 피고인 측과 방청객의 숨소리만이 가득하던 법정에는 방송용 카메라가 총출동한 상태였다. 낯선 장비가 그득한 환경 탓인지 변론서를 들고 일어서는 베테랑 검사 이건리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검사장)의 손은 파르르 떨렸다.
사상 최초로 대법원 재판이 방송과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각급 법원을 통틀어 재판과정이 방송으로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이날 공개변론은 한국정책방송(KTV)과 대법원 홈페이지, 포털사이트 네이버 등을 통해 중계됐다.
양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2시 10분부터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이날 전원합의체 공개변론 생중계는 재판절차와 사건내용에 대한 양 대법원장의 안내로 시작됐다.
피고인은 한국인 남편의 동의 없이 당시 생후 13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모국으로 출국해 아이를 두고 돌아온 혐의(국외이송약취죄 등)로 기소된 베트남 여성 A(26)씨다. A씨는 출국 상태라 변론에는 검찰과 변호인 측, 참고인만이 출석했다.
모두변론에 나선 검찰 측 이건리 부장은 “이 사건은 부모 중 일방이 어린 자녀를 몰래
출국시켜 아버지의 사랑과 양육을 배제하고 자녀의 복리를 완전히 침해한 것으로 정당화 할 수 없는 사항”이라고 입을 뗐다. 화면에는 “갑자기 목숨과 같은 어린 자녀를 빼앗긴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은 어디에서 하소연 해야 하냐”고 호소하는 이 부장과 이를 경청하는 대법관들의 심각한 표정이 번갈아 담겼다.
이어 A씨의 국선변호를 맡은 김용직 법무법인KCL 대표변호사는 “A씨는 13개월 된 아이가 방치될 까봐 친정에 데리고 간 것 뿐”이라고 맞섰다. 이어 “한번 출국한 아동의 소재는 찾기 어려운데다 프랑스 일본 등도 이를 처벌한다”(검찰 측 참고인 곽민희 숙명여대 법대 교수), “법은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피고인 측 참고인 오영근 한양대 법학전문재학원 교수) 등 양 측 주장이 팽팽하게 오가자 논쟁은 더 뜨거워졌다. 이를 듣던 대법관들의 날카로운 질문 속에 변론이 계속되자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의 이마에 땀이 송알송알 맺혔다.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방송을 지켜본 사람들은 “재판 과정을 처음 봤는데 변론 모습이 멋있었다”,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 궁금하다”, “야구도 봐야 하는데 재미있어 변론 생중계를 보고 있다”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시도된 재판 생중계에 NHK 등 외신도 큰 관심을 드러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방송중계는 사법 절차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돕고, 신뢰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앞으로도 국민적 관심을 모은 사건에 대한 공개를 꾸준히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재판의 선고 기일은 추후 결정될 예정이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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