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도 더 전인 2월 18일 ‘된소리 못된 소리’라는 글에 ‘된소리가 욕설에 흔히 쓰이거나 못된 뜻을 실어 나르는 경우가 많다.’고 썼다. 그래서 개새끼와 같은 욕에서 된소리를 빼고 개새기, 나쁜 놈을 나븐 놈이라고 하면 언어가 순화되는 느낌이 든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된소리는 못된 소리만 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예쁘고 좋은 소리를 실어 나르는 경우가 참 많았다. 깨끗하다, 예쁘다, 기쁘다, 미쁘다, 깐깐하다, 깔끔하다, 깡깡하다(단단하다의 사투리), 꼼꼼하다, 빼어나다, 따뜻하다, 똑똑하다, 똘똘하다, 싹싹하다, 씩씩하다, 짱짱하다(생김새가 다부지고 동작이 매우 굳세다), 끌끌하다(마음이 맑고 바르고 깨끗하다)... 멋지고 예쁜 된소리 말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렇게 예쁘고 좋은 된소리가 많은 것은 “된소리가 못된 뜻만을 실어 나르는 걸까 혼자 갸우뚱했다.”는 분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왜 그분과 달리 못된 소리만 떠올리는 걸까. 평소 사고나 생활태도에 문제가 많구나.’ 하는 생각을 저절로 했다.
된소리가 있는 덕분에 아이들은 쑥쑥 자라고 술꾼들은 오늘도 꿀꺽꿀꺽 폭탄주를 잘도 마시고 짝짝 손뼉을 치며 노래방에서 함께 어울린다. 연인들은 쪽쪽 쭉쭉 입 맞추고 꼭 끌어안고 ‘우리 둘이 끝까지 서로 사랑하자’고 새끼손가락 걸며 꼭꼭 다짐을 한다.
밝고 늘씬한 쭉쭉 빵빵 미녀들은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껄껄 깔깔 낄낄 까르르 즐겁고 통쾌한 웃음소리. 꿀꿀꿀 귀여운 아기돼지 3형제, 낑낑 혼자서 무거운 짐을 들어보려고 애쓰는 어린이, 똑똑똑 그토록 기다리던 반가운 이의 노크소리...
그러니 사람들아. 이 즐거운 세상에서 쫀쫀하고 쪼잔하게 굴지 말고 쩨쩨하게 행동하지 말고 남들에게 까탈 부리며 까칠하게 대하지 말고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 끈기와 뚝심으로 똑바로 살아가도록 하자.
‘좋은 인생을 연출하는 6가지 전략’이라는 것도 있던데, 그 여섯 가지는 ‘꿈 꼴 꾀 끼 깡 끈’, 이렇게 모두 된소리로 된 말이다. 자신의 모습을 성실하게 가꾸면서 슬기롭고 용기 있게 기질과 특기를 살리고 남들과 잘 어울림으로써 꿈을 이루자는 뜻이다.
된소리가 없으면 쌀도 없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을 꼭꼭 씹어 먹으면서 하늘과 땅, 세상과 가족에 대해 감사할 수도 없다. 거리의 가엾은 사람들을 안타까이 여기는 짠한 마음에서 꾹꾹 눌러 담은 쌀밥을 퍼 주는 봉사도 하기 어렵다.
된소리가 없으면 꽃이 필 수 없다. 꽃이라는 글자는 어찌 이리도 꽃을 빼닮았을까? 그러나 된소리가 없으면 내가 그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그 이름은 허공 중에 흩어질 뿐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될 수 없다. 나도 그에게로 가서 그의 꽃이 될 수 없다. 된소리가 없으면 그는 영원히 다만 하나의 몸짓에 불과할 뿐이다. 낮에는 꽃을 보고 밤에는 별을 보라. 꽃과 별은 우리를 향해 지상과 천상에서 오늘도 방끗방끗 반짝반짝 웃는다, 빛난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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