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늙음의 찬가다. 마치 유쾌한 학예회를 보는 듯하다.
'콰르텟'은 노인영화다. 노인 감독이 노인 배우들로 노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노인영화라면 먼저 쓸쓸함 고독 죽음 등을 떠오르겠지만, 이 영화의 노인들에게선 쿰쿰한 군내가 아닌 화사한 꽃밭을 뒹군듯한 향기가 가득하다.
영화의 무대는 나무들이 울창한 정원을 배경으로 하는 고풍스러운 요양원 비첨하우스. 최고의 음악가들이 은퇴 이후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는 곳이다.
비첨하우스의 노인들은 곧 있을 갈라콘서트 준비에 한창이다. 이들 중엔 한때 전설의 콰르텟 일원으로 세계 오페라계를 쥐락펴락했던 음악가 레지, 윌프, 씨씨도 있다. 레지(톰 커트니 분)는 전형적인 영국신사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반듯한 몸가짐과 매력적인 미소를 유지하고 잇다. 윌프(빌리 코놀리)는 비첨하우스의 분위기 메이커.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여인에게 짖궂은 농담을 일삼으며 들이댄다. 씨씨(폴린 콜린스)는 천진난만할 정도로 귀여운 인물이다. 치매 초기증상이라 자꾸 무언가를 잊어버리지만 그래서 더욱 엉뚱하고 발랄한 매력을 뽐낸다.
어느 날 비첨하우스에 거물급 인사가 새로 들어온다. 12번의 커튼콜이 다반사였던 세계적인 성악가인 진(매기 스미스)이다. 한때 레지, 윌프, 씨씨와 함께 콰르텟 멤버이기도 했다. 특히 레지와는 가슴 아픈 사랑의 과거를 지닌 여인이다.
진의 등장에 비첨하우스는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운영비가 부족해 문 닫을 위기인 비첨하우스를 살릴 기회라 판단, 진이 포함된 전설의 콰르텟의 갈라콘서트를 열어 대대적인 후원금을 모을 계획이다.
멤버들은 진을 설득해보지만 쉽지 않다. "재능이 사라졌다. 내게 실망하는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진에 씨씨가 답한다 "그래 분명 장미는 시들고 사라졌어. 하지만 지금은 국화가 한창이야." 거듭된 설득과 우여곡절 끝, 진은 마음을 돌리고 그들은 드디어 무대로 향한다.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은 또 하나의 감동이다. 영화에 등장한 실제 음악가와 배우들의 프로필이 화면을 장식한다. 별처럼 빛났던 젊은 시절의 사진과 함께 등장하는 그들에게 저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콰르텟'의 감독은 더스틴 호프만이다. 그는 감독 데뷔작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매끄러운 연출력을 선보였다. 화면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영화의 따뜻한 색조에서 그의 부드러운 미소가 느껴진다. 그가 75세 나이에 연주해 낸 마지막 악장, '콰르텟'은 싱그러웠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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