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2030 세상보기] 학교 폭력과 왕따로 죽음을 생각하는 동생에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030 세상보기] 학교 폭력과 왕따로 죽음을 생각하는 동생에게

입력
2013.03.20 12:08
0 0

너의 고통을 알면서 모른 척 했던 나를 용서하지 마렴. 너를 괴롭혔던 그들을 용서하지 말자구나.

죽음 앞에서 갈등하는 네게 이렇다 할 위로와 위안의 말이 생각 나질 않는구나. 네가 겪는 고통을 짐작하고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모른 척 했던 지난 날을 사과하고 싶구나. 우리는 네 옆에 있었으면서도 철저하게 너를 혼자로 만든 사람들이잖니. 너를 방조한, 그들을 내버려둔 우리는 그들과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야. 미안하다. 진심으로 네게 사과하고 싶어. 하지만 다시 또 다른 시간이 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지 모르니, 아직은 용서하지 마렴. 하나도 잊지 말아주렴.

그들보다 우리의 잘못이 크다는 것을 너의 죽음이 눈앞에 펼쳐지고 나서야 깨달았으니, 옆에서 지켜보고 가만히 있었던 우리의 관용이 얼마나 교만했었던가 자조해본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어우러져 사는 시민으로써, 역사를 짊어지고 왔던 국민의식이 네 죽음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 가 싶어. 분명 맞을 거야. 같이 살면서도 서로를 모른 체 하는 데 익숙한 풍경을 스스로 만들어 냈거든.

남의 일에는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는 관념이 너를 고통 속에 내버려 둔 가장 큰 원인일 거야. 도둑이 설레발을 치며 도적질을 하며 돌아다녀도 남의 집 일이니, 내 집 일이 아니니 가만히 있었던 기성세대, 우리 세대가 만들어낸 풍토가 너를 죽음 앞에 이르게 했다고 나는 믿는단다. 내 잘못이야, 모두 우리의 잘못이야. 우리의 역사를 송두리째 훔쳐, 도적질을 일삼았던 지난날의 역적들을 쉽게 용서하고 화해했던 우리 선대의 풍토가 지금, 꽃다운 나이의 너를 죽음에 내몬 걸 거야. 네 인생을 훔쳐간 그들을, 역사를 훔친 도적들을 언제나 포용하고 쉽게 용서한 우리 모두의 관용이 너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걸 거야. 그러니 이제부터 절대 용서하지 말자.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고, 쉽게 용서하려 했던 의식이 너를 죽음 앞에 밀어 넣은 걸 거야.

네가 죽음 앞에 서 있는 까닭은 너 때문이 아니야. 남 때문에 죽지 말아다오. 죽음이라는 것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행해져야 한단다. 그들을 위해 죽지 말아다오. 모른 척 했던 우리를 위해 죽으면 안 된단다. 너의 죽음은 그들과 우리에게 또 다른 관용을 만들어 내는 것이란다. 이제 죽음으로써 일단락되어서는 안 된단다. 이제껏 우리가 죽음으로써, 이해와 양보와 화해로써 그들을 용서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도적 떼들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아진 것이란다. 우리의 삶과 역사 모두를 훔쳐간 것이란다.

이제는 용서하지 말자구나. 살아서 끝까지 복수하자구나. 그러니 살아다오. 우리가 빼앗긴 역사와 삶을, 네가 빼앗긴 인생을 되찾기 위해서 같이 복수하자 구나. 너는 살아서 우리가 행했던 오만한 관용을 바로 잡아줘야 한단다. 복수해야 한단다. 죽음은 그들을 용서하고 인정하는 일이란다. 이제는 쉽게 용서하지 말고,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화해하려고 하지 말자구나. 죽음은 복수가 아니란다. 더욱 그들을 그들이게 만들어주는 패배란다. 너의 죽음으로 그들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리 없단다. 그런 것이 가능한 인간이었다면, 애초에 남의 인생을 훔치지도 않았겠지. 그러니 당장은 용서하지 말자구나.

우리가 도와줄게. 앞으로는 가만히 잊지 않을게. 모른 척 하지 않으마. 네가 빼앗긴 인생을, 삶을, 미래를 되찾아 오기 위해 남의 일처럼 가만히 잊지 않으마. 네 편에 서서 분노하고, 화내고, 용서하지 않으마. 진정, 네 편이 되어 복수할 수 있을 때, 네가 가졌던 미래의 시간을 온전하게 되찾아 왔을 때 우리를 그때, 용서해주렴. 그들을 그때 용서해주렴. 용서와 화해는 그랬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란다.

그들이 한 편을 먹고, 떼로 혼자인 너를 훔쳤다면, 이제 너에게는 더 큰 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구나. 우리는 네 편이란다. 살아서 함께 인생을 훔친 도적들에게 복수하자구나. 살아서 우리를 용서해줘야 하지 않겠니? 우리에게도 기회를 주렴. 옆집 형이.

백가흠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