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의 모 사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최모(24ㆍ여)씨. 그는 안정적이고 연봉도 많은 은행원이 꿈이다. 최근 국제금융 분야의 자격증도 취득했다. 최씨는 "은행에 입사해 국제금융 담당 임원까지 오르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은행은 많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장이다. 특히 여직원 비율이 높다 보니 여성 취업 준비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하지만 최씨가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은행에 입사하더라도 현재로선 임원까지 오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은행의 '유리천장'(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회사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상상 이상으로 두텁기 때문이다.
19일 한국일보가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국민, 신한, 우리, 하나, 외환, 스탠다드차타드(SC), 기업, 씨티 등 8개 시중은행의 임직원 현황(작년 9월 말 기준)을 살펴본 결과, 여성은 ▦고용안정성 ▦연봉 ▦근속연수 ▦임원 비중 등 모든 면에서 남성보다 현격히 뒤쳐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4대 시중은행 임원 88명 가운데 여성은 단 1명도 없었다.
8개 시중은행의 전체 직원 수는 9만324명(남 4만6,984명, 여 4만4,240명)으로 남녀가 1 대 1의 비율에 가까웠다. 하지만 여성은 계약직이 많아 고용안정성이 크게 떨어졌다. 여성 계약직(1만4,115명)은 은행원 6명 중 1명 꼴로, 남성 계약직(2,691명)의 5배를 훌쩍 넘었다. 외환은행은 여성 계약직이 남성 계약직보다 8배 이상 많았다.
남녀 연봉 차이도 2배에 육박했다. 8개 은행의 남성 평균 연봉은 7,600만원에 달한 반면, 여성은 4,037만원에 그쳤다. 여성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외환은행(4,900만원)도 남성 평균(9,900만원)의 절반에 못 미쳤다. 이어 씨티(4,400만원), 우리(4,300만원), 신한(4,100만원) 순이었으며, 역시 각각 7,400만원, 7,200만원, 7,700만원인 남성 평균 연봉과 격차가 컸다. 여성 평균 연봉이 가장 낮은 곳은 기업은행(3,400만원)이었다.
이처럼 고용이 불안하고 연봉도 낮다 보니 여성은 남성에 비해 훨씬 일찍 직장생활을 접는 것으로 나타났다. 8개 은행의 남성 평균 근속연수는 17년7개월인 반면, 여성은 10년6개월로 남성보다 7년이나 짧았다.
모 은행 관계자는 "창구 직원(텔러) 대부분이 비정규직 여성이어서 연봉과 근속연수가 남성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단순 수치로만 따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성임원이 거의 없는 현실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김영주 민주통합당 의원에 따르면 씨티은행(14명 중 3명이 여성) 등 외국계를 제외한 국내 은행 임원 191명 중 여성은 기업은행 단 1명뿐이다. 비율로 따지면 0.5%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해 직원 1,000명 이상 국내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 4.7%(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도 크게 못 미친다. 김 의원은 "여행원의 고용 불안, 낮은 연봉, 짧은 근속연수 등이 유리천장으로 작용해 여성 임원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며 "남녀 직원들이 성차별 없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인사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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