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기능이 22일이면 사실상 마비될 수도 있다. 지난 1월 이강국 전 헌재 소장이 퇴임한 후 소장 자리가 공석이고, 소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송두환 헌법재판관도 이날로 퇴임하기 때문이다. 전체 9명의 재판관 중 2명의 자리가 비는 사상 초유의 '7인 헌재 체제'가 된다. 그간 헌재 소장 인선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청와대도 "조만간 인선 한다"며 "공백 사태 최소화하도록 할 것"이라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헌재는 침통한 분위기다. 1988년 출범 이후 2명의 재판관이 한꺼번에 공석이었던 적은 없었던데다, 이마저 언제 정상으로 돌아올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헌재는 2006년 전효숙 당시 헌재 소장 후보자가 낙마한 후 140여일 동안 공석이 있었고, 2011~2012년 조대현 전 재판관 후임으로 지명됐던 조용환 전 재판관 후보자가 낙마해 14개월 동안 공백 사태를 겪었다.
물론 헌법재판소법상 재판관이 7명 이상만 되면 최고의결기구인 평의(評議) 개최와 결정 선고 진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헌재는 "법적으로야 문제가 없지만, 7인 체제라면 실제로는 헌재 심판이 사실상 마비되는 것"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헌재는 위헌 결정을 위해서는 6명 이상 재판관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꼽고 있다. 7명 재판관의 사실상 전원일치나 다름없는 합의가 나와야 위헌 선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헌법재판관은 "7명 이상이면 재판이 가능하도록 한 규정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재판을 멈춰서는 안된다는 취지이지, 7명으로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헌재 소장 공석 사태가 40일 이상 지속되고 있는데 청와대가 '7명 이상이면 충분히 운영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방관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헌재가 이번 3월 선고를 통상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여는 관례를 깨고 1주일 앞당겨 21일에 열기로 한 것도 이런 상황에서 나온 궁여지책으로 풀이된다. 헌재는 이날 유신정권에서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화 요구를 억압하는 수단이 됐던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1ㆍ2ㆍ9호의 위헌 여부를 헌법소원이 제기된 지 3년여 만에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지난해 8월 '낙태죄' 사건과 '불법체류 외국인 강제퇴거' 사건을 합헌으로 결정한 지 7개월 만에 위헌 여부 결정을 내리는 주요 사건이다.
여기에는 송두환 재판관 퇴임 전에 최소한 '8인 체제'로 이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해야 한다는 재판관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 안팎에서는 "현재로서는 위헌 결정이 내려질 공산이 큰데, 진보적 성향인 송 재판관의 표가 없어질 경우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다는 점이 고려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을 끝으로 7인 체제에서는 당분간 주요 사건에 대한 헌재의 선고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성충동 약물치료(화학적 거세) 관련 위헌법률 사건, 투표시간 연장 관련 헌법소원 사건, 이화여대 로스쿨 관련 헌법소원 사건 등 현재 866건에 달하는 미선고 사건의 수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1명의 재판관이 공석이었던 지난 2월 헌재가 선고한 사건 수는 27건으로 지난해 12월 47건과 비교해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헌재 관계자는 "겉으로야 헌재가 문제 없이 운영되는 것 같아도 안은 곪을 대로 곪은 상태"라며 "재판관 공석이라는 위헌적인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 건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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