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의 선출 소식을 접했던 날 저녁, 노트파일을 뒤졌다. 어떤 책에서 읽고 메모해 두었던 성 프란치스코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밤입니다. 비가 내리고 배가 고픕니다. 나는 밖에서 내 집 문을 두드립니다. 내가 왔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나는 밖에서 비를 맞으며 굶주린 채 밤을 새웁니다. 기쁨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새 교황이 택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나를 다시금 이 난해한 말씀 속으로 데려간다. 남의 집도 아닌 하필 내 집으로부터 거절당한 채 굶주리며 벌벌 떠는'기쁨'이라니. 원래가 남의 집이라면 가난과 비참은 팔자려니'체념'할 수 있다. 내 집인데 남이 차지하고 들어앉았다면 잃은 것을 응당 되찾아 오려는'투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체념도 투쟁도 아닌 기쁨이라니. 내가 내 집으로부터 버려진 외로움과 서러움을 어떻게 하면 분노나 증오나 원한이 아닌'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나의 바깥에서 진정한 나를 갈구해야 한다는 뜻일까. 내 집이란 내가 머무는 둥지가 아닌 내가 깨고 나와야 할 알이라는 뜻일까. 천사의 눈은 인간의 눈과 달라, 버림받은 깊은 절망만이 그대로 은총일 수 있다는 뜻일까. 나로서는 요원한 물음이다. 신과 인연이 깊었다면 좀 달랐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새 교황은 혹시 이 물음에 대한 작은 빛을 보여주시려나. 그는 프란치스코니까. 아시시가 아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프란치스코.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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