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울산에서 급여를 모은 돈 1억원을 기부해 세간의 화제가 된 대기업 생산직 근로자가 사실은 재판을 앞둔 아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게 하기 위해 억지춘향 식으로 돈을 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울산 한 지역 신문 2면 광고란에 박우현씨의 이름으로 '사과문'이 실렸다. 박씨는 현대중공업 생산직으로 25년간 근무하며 매달 급여의 일부를 모은 돈 1억원을 기부해 화제가 된 인물.
박씨는 이날 사과문에서 최근 대한적십자 울산지사와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각 5,000만원 총 1억원을 기부한 것은 맞지만 사실 이 돈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박기연씨의 돈이라고 밝혔다. 기연씨는 박우현씨의 아들이다.
박씨는 이어 "기연씨가 직장생활 과정에서 합당하지 못한 수입이 생겨 그 처리를 고심하던 중 사회 환원을 결심했고 자신을 대리인으로 세워 기부하게 됐다"고 밝혀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박씨는 "사실과 다른 기사가 나가게 돼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면서 사과문 말미에 '박우현ㆍ박기연 배상'이라고 두 사람의 이름을 함께 적었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4일 보도자료를 내고 박씨의 '선행'을 알렸다. 당시 회사 측은 가난한 농부의 6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박씨가 매달 급여 일부를 떼어 모았고 그의 아내 역시 건설현장에서 부업을 해 모은 돈을 보탰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박씨가 이날 갑작스럽게 신문에 사과문을 내면서 회사 측은 크게 당황했다. 회사 측은 이날 출근한 박씨와 면담한 결과, 박씨로부터 현재 항소심 재판 중인 아들 기연씨의 형량에 '정상참작'을 위해 기부했다는 해명을 들었다. 기부행위는 담당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이뤄졌다는 것이다.
또 당초 아들 명의로 몰래 기부하려 했으나, 돈을 받은 공동모금회 측이 갑자기 큰 돈이 개인 이름으로 들어오자 기부자의 직장을 추적했고, 현대중공업 측이 박씨에게서 돈이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하면서 선행사례로 홍보를 벌인 것이다. 이날 사과문도 진실의 고백이 아닌 기부자 이름이 잘못됐음을 정정하기 위한 광고였던 셈이다.
아들 기연씨는 울산의 한 플랜트 업체 간부로 근무하면서 사문서를 위조해 지난달 울산지법 1심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 받았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날 "물의를 일으켜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기부를 받은 울산적십자와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역시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며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울산=목상균기자 sgm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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