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18일 돌연 사퇴했다. 반도체 장비업체를 중견기업으로 키워낸 입지전 때문에 화제를 모았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내정 나흘 만인 이날 사의를 표명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지연 와중에 자진 사퇴한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황 내정자마저 사퇴하면서 성공한 벤처기업인의 정부 고위직 등용은 또 다시 실패했다. 특히 황 내정자의 사퇴 배경에 청와대의 어설픈 인사검증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반도체 장비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 대주주이기도 한 황 내정자의 직접적인 사의 표명 이유는 주식 백지신탁제도 때문이다. 공직자 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는 재임 기간 공정성 시비를 막기 위해 본인·배우자·직계존비속 등이 보유한 주식 합계가 3,000만원 이상이면 반드시 매각하거나 처리 전권을 타인에게 위임하는 백지신탁을 해야 한다.
황 내정자도 내정 직전에 청와대 측으로부터 이 같은 설명을 들었지만 재직 이후에는 회사 주식을 돌려받는 것으로 이해한 것 같다. 하지만 공직윤리법상 백지신탁의 경우 신탁기관이 60일 내 주식을 매각할 뿐 아니라 매각 후 매각대금도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운용된다는 것을 황 내정자는 뒤늦게 알게 됐다. 다시 말해 중소기업청장을 하려면 회사를 내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황 내정자는 이날 사유서를 통해 "회사와의 관계를 단절할 각오까지는 했지만 백지신탁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해 보니, 도저히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너무 가혹한 것이었다"며 "제 인생을 걸고 창업해서 지금까지 일구어온 회사의 소유권까지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황 내정자는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자신(25.45%)과 부인(1.78%) 명의로 27% 넘게 보유하고 있다. 현 시가대로라면 740억원이 넘는 규모다.
청와대 측도 상당히 당혹해 했다. 황 내정자가 주식을 처분하지 않고도 임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지만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황 내정자의 사의를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톱 밑 가시 빼내기'로 상징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소기업 정책을 수행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중기청장 인선에서 청와대가 큰 허점을 보인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청와대가 차관급 인사를 하면서 내정자의 주식 보유 현황과 임명 이후 벌어질 상황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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