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인 출신 첫 중소기업정책 사령탑'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중도하차 하게 된 이유는 공직자 주식백지신탁제도. 2005년2월 도입 이래 이 제도로 인해 낙마하게 된 공직자도 그가 처음이다.
주식백지신탁은 공직자가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1급 이상 고위 공무원(금융위원회 등 일부 부처는 4급 이상 해당)과 국회의원 등은 본인과 배우자, 직계 존비속 등이 보유한 주식 합계가 3,000만원이 넘을 경우 ▦공직취임 1개월 안에 매각하거나 ▦처리 전권을 타인에게 위임하는 백지신탁을 해야 한다.
물론 모든 공직자가 갖고 있는 모든 주식을 다 처분하거나 위임해야 하는 건 아니다. 행정안전부 소속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 심사를 받아 직무연관성이 없는 주식이라고 판단되면 매각하거나 백지신탁을 할 필요가 없다.
현대중공업 대주주로서 수조원대 주식을 보유한 정몽준 의원이 그런 경우다. 만약 정 의원도 유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나 정무위원회 등에서 활동한다면 백지신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업무와 무관한 외교통상위원회 등을 택했기 때문에 주식을 계속 보유할 수 있었다.
주식을 수탁받은 기관은 60일 이내에 처분하거나, 국공채 등 다른 금융자산으로 바꿔 운용해야 한다. 어디에 어떻게 운용하는지도 공직자 본인에겐 통보되지 않으며, 운용결과 재산상 손실이 나도 수탁기관은 책임지지 않는다.
황철주 전 내정자가 몰랐던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그는 "백지 신탁한 주식을 퇴임 후 그대로 돌려받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장이기에 앞서 주성엔지니어링 대주주(지분율 25.4%)였던 그로선 백지신탁 후 주식이 처분될 경우, 대주주 지위상실은 물론 회사 자체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수 밖에 없어 결국 공직포기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황 전 내정자의 하차를 계기로, 일각에선 백지신탁제도가 가뜩이나 비좁은 인재풀을 더 비좁게 한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백지신탁이 있는 한 중소기업인은 절대로 중소기업청장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블라인드 트러스트(blind trust)'제도 등 많은 선진국들이 이런 장치를 두고 있고 공직자들의 사적 이익추구를 막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장치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정부 관계자는 "백지신탁이 없으면 건설업자가 국토부 장관이 되고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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