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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빌딩' 헛된 꿈이었나… 용산도 '마천루의 저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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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빌딩' 헛된 꿈이었나… 용산도 '마천루의 저주' 위기

입력
2013.03.1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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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는 요즘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전체 52개 필지 중 8개를 제외하곤 모두 주인을 찾았다. 그런데 유독 133층(656m)짜리 랜드마크 빌딩이 들어설 자리는 4년이 지나도록 텅 비어 있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채 황량한 모습이다. 인천 송도 랜드마크시티 사업의 상징인 인천타워(151층, 587m) 역시 2008년 첫 삽을 뜬 이래 한 층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두 곳 모두 각각 70층, 102층으로 목표를 낮춰 잡았지만 여전히 건립 자체가 불투명하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시장 침체, 수요공급법칙을 무시한 무리한 계획, 사업주체간 양보 없는 갈등이 빚은 예고된 저주로 볼 수 있다.

최근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진 용산개발사업 정상화 방안(15일자 15면)에도 랜드마크 빌딩(111층, 620m)의 층수 축소(80층)가 있다. 층수를 낮춰 건축비를 40%가량 절감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호황이 계속되리라는 헛된 믿음과 이해당사자간 이전투구 탓에 세계 2위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는 꿈이 무너진 건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겠다는 인간의 탐욕이 뒤엉켜 결국 무산된 바벨탑을 연상시킨다.

바벨탑의 저주는 성경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1999년 도이치방크의 연구원 앤드류 로렌스는 초고층빌딩이 등장하면 경제위기가 뒤따른다는 '마천루 지수'(Skyscraper Index)를 만들었다. 예컨대 1907년 당시 최고였던 미국 뉴욕 맨해튼의 싱어빌딩(47층, 187m)은 20세기 첫 금융위기를, 1929년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102층, 381m)은 세계대공황을, 1973년 세계무역센터(110층, 417m)는 1차 오일쇼크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선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88층, 452m)가 준공된 1998년 아시아 전역이 외환위기에 시달렸다.

마천루 지수는 과거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수가 발표된 10년 뒤쯤 세계 최고의 빌딩인 두바이의 부르즈할리파(163층, 828m)가 한창 공사 중일 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후 마천루 지수는 '마천루의 저주'라 불리게 됐다. 저주라는 표현이 지나치긴 하지만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 건축 열풍은 아이러니하게도 경기가 꼭지에 이르렀다는 방증이었던 셈이다.

1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국내에서 추진된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은 서울 5곳을 포함해 10여 곳에 이른다. 그러나 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되는 곳은 롯데 슈퍼타워(123층, 555m) 정도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주도한 뚝섬 부지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설 계획은 제동이 걸렸고,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잠실종합운동장 부지 등에서 추진됐던 초고층 빌딩 건립은 사실상 무산됐다.

착공도 못한 용산이 마천루의 저주를 일깨운 이상 다른 초고층 빌딩 사업과 대형 부동산 프로젝트의 연쇄 무산도 우려된다. 충북 오송역세권 사업은 유력한 투자자로 거론됐던 삼성물산, 롯데관광개발 등이 용산에 발이 묶였고, 천안 국제비즈니스파크 개발사업은 출자회사들이 추가 투자와 지급보증을 꺼리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현재 전국에서 진행 중인 28개 공모방식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개발사업의 규모는 77조원이 넘는다.

당장 용산 부근 부동산시장은 집값 급락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용산 개발사업의 수혜지로 꼽혔던 용산구 이촌동, 도원동, 한강로3가와 마포구 공덕동, 아현동 등 5개 지역은 2010년 이후 현재까지 단 한 곳도 아파트값이 오르지 않았다. 3주간 보합세를 유지하던 서울 아파트가격은 용산 디폴트 이후 용산구(-0.12%), 마포구(-0.10%) 등의 영향으로 하락세(-0.03%)로 돌아섰다.

그런데도 코레일이 내놓은 용산 정상화 방안은 민간 출자사들의 반발에 막혀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다음달 2일까지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용산 사업은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본부장은 "대마불사 믿음이 깨지면 한남뉴타운, 한강로 주변 등 다른 사업장들도 줄줄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며 "시장 자체가 어려워 이해당사자간 극적 타협 외엔 뾰족한 해법이 없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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