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국내 은행 예금에 부담금을 부과하기로 한 결정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손실을 우려한 예금자들이 대량 인출(뱅크런) 조짐이 보이고 역내 다른 위기국에 키프로스가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 16일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진 직후부터 주말 내내 키프로스 내 현금인출기 앞은 돈을 인출하려는 예금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인출기 현금이 바닥나고 전자송금이 중단되면서 예금자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묘사했다. BBC방송은 “키프로스 국민은 예금 부담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는 키프로스에 100억유로(약 14조5,000억원) 규모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10만유로 미만 계좌에는 6.7%, 그 이상 계좌에는 9.9%의 일회성 부담금을 물리기로 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후 키프로스 내 반발이 거세자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은 17일 “소액 예금자 보호가 필요하다”며 “구제금융 조건 완화에 노력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은 재정부가 10만유로 미만 계좌 부담금을 3.0%로 낮추는 대신 10만유로 이상 계좌 부담금을 12.5%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키프로스 의회의 집권당 의석이 전체 56석 중 20석에 불과한데다 야당 의원 상당수가 이 안에 회의적이어서 예금 부담금 승인 여부는 불투명하다.
한편 유로존 위기국들은 자국에서도 뱅크런 사태가 벌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앞서 4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은 스페인 중앙은행은 16일 “스페인 금융시스템은 정상 가동 중”이라며 우려 불식에 나섰다. 시장은 키프로스 은행에 예치된 해외 자금의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키프로스 은행 예금 700억유로 중 3분의 1 가량인 200억유로가 러시아 자금이며 이들 중 상당량이 검은 돈이어서 향후 러시아가 아닌 독일, 영국, 스위스 등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편 키프로스 구제금융 결정으로 유럽 재정 불안이 다시 커지자 18일 도쿄 증시는 주말 직전 15일보다 2.7% 떨어졌고 유럽 주요 증시도 급락세로 출발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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