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자르러 갔다. 손님이 없는 한적한 시간이었다. 미용사는 내 머리칼에 분무기로 칙칙 물을 뿌리며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왜 이 일을 좋아하는지 알아요? 레디메이드가 불가능하거든요."
사각사각 가위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머리칼은 다 달라요. 개털이라 할 만큼 굵고 뻣뻣한 머리, 대책 없이 가는 직모, 숱도 가르마도 가지각색이죠. 두상과 이마 모양도 그렇고."가는 직모에 두상이 형편없는 나는 얼굴이 살짝 뜨거워진다."그래도 손님이 원하는 머리를 해야 해요. 동시에 어울리는 머리를 해야 하고요. 파란 염색? 해달라면 해야죠. 하지만 손상이 적을 방법을 택하는 거, 파란 색 중에서도 어떤 염료가 손님의 안색과 어울릴지 고르는 거, 그건 내 몫이에요. 주어진 재료, 손님의 요구, 전체적인 조화, 이런 걸 전부 고려해서 몇 분만에 판단해야 해요. 조마조마하면서도 멋진 일이에요."
미용사의 상기된 마음에 전염이라도 된 듯 이번에는 내가 입을 열었다."있잖아요, 같은 미용사에게 같은 머리를 부탁해도 매번 조금씩 달라요. 내일이나 모레가 되면 머리는 조금 자라거나 파마가 풀리고요. 머리는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다는 거, 단 한 번도 이 세상에 있어본 적 없는 머리라는 거, 신기해요."
가위소리 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눈 지 2주가 지났다. 목덜미를 만져본다. 그 사이 제비초리를 따라 자란 머리칼이 손끝에 만져진다. 오직 오늘만의 머리칼이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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