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아시아의 미얀마는 우리에겐 '버마 아웅산 묘지 폭파사건'으로 기억되는 나라다. 당시 북한의 만행에 이범석 외무장관과 김재익 경제수석을 비롯한 17명의 각료와 수행원이 머나 먼 타국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이런 일이 벌어진 지 벌써 30년이 됐다.
우리에게 가슴 아픈 나라 미얀마는 중국에겐 속이 쓰린 나라다. 중국은 미얀마에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념적인 동질성도 한몫 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정학적 가치 때문이다. 인도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출구가 없는 중국에게 미얀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다. 중국은 그 동안 인도양 출구가 없는 탓에 경제성장에 필요한 중동ㆍ아프리카 산 원유와 가스의 대부분을 말라카 해협까지 우회한 뒤 들여왔다. 중국이 무려 25억달러(약 2조8,000억원)를 들여 미얀마의 차우크퓨항과 윈난(雲南)성을 연결하는 파이프를 설치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경우 수송거리를 최소 1,200㎞나 줄일 수 있고 에너지 안보도 크게 높일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변수가 생겼다. 그 동안 중국이 적극 지원해 온 군부가 퇴진하고 2011년 테인 세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민선 정부가 출범하며 중국과 미얀마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게 된 것이다. 여전히 군부가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민선 정부는 중국이 투자한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 대해 잇따라 제동을 걸면서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민주화 성과도 더디긴 하지만 이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에 호응해 그 동안 경제제재를 통해 미얀마를 전면 압박해 온 미국은 지난해 제재를 풀었다. 급기야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임 이후 첫 해외 순방국으로 미얀마를 직접 찾아 손을 내밀었다. 미국이 아시아 회귀를 선언한 뒤 그렇잖아도 심기가 불편한 중국은 이제 가장 가깝던 우방이 가상의 적과 연대하는 것을 눈 앞에서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다.
미얀마에 대한 뼈 아픈 경험은 중국의 대북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과 미얀마는 비슷한 점이 많다. 먼저 두 나라 모두 사회주의 군사독재 국가다. 미얀마가 중국의 남서쪽 국경과 2,200㎞를 접하고 있다면 북한은 중국의 북동쪽 국경과 1,300㎞를 맞대고 있다. 미얀마가 중국의 인도양 출구라는 전략적 중요성을 갖는다면 북한은 중국의 동해 출구로서 없어선 안 될 존재다. 미얀마와 북한 모두 민족ㆍ자주ㆍ독립 의식이 강해 중국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는 점도 같다.
이런 유사점은 중국에게 북한이 제2의 미얀마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더구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오바마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길 원한다는 사실까지 보란 듯이 공개하고 나선 상황이다. 전통적 우방인 미얀마가 미국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 데 이어 이젠 한국전쟁에서 수십만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지켜온 북한과의 특수관계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대북제재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지만 미얀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제재를 풀고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평양으로 띄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얀마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미중의 최대 각축장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북한인 셈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중국이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찬성하며 북중 관계의 변화를 점치는 시각이 적잖다. 중국이 대북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은 결코 북한의 적이 되려 하진 않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변화에 흥분해 속까지 오판해선 안 된다. 중국에게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협력을 요청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중국만 더 북한을 압박해 주면 한반도 문제는 모두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 짝이 없다. 중국은 누가 뭐라 하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뿐이다. 결국 우리의 일은 우리의 손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과 원칙이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한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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