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사태는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경영난'을 이유로 한 사측의 대량해고, '생존권'을 앞세운 노조의 강경파업,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의 개입, 그리고 근로자간 노ㆍ노 갈등까지. 기업과 근로자가 공멸의 길로 가는 사이 정부는 수수방관했고, 갈등조정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현재 두 회사 모두 평온은 되찾았지만, 깊은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고 또 다른 갈등이 진행되고 있다. 두 회사를 직접 다녀왔다.
■ 쌍용차 평택공장 르포"일감 늘어야 동료들 컴백" 코란도 신형에 명운 걸어 교육 마친 복직자들 곧 배치국정감사·추가 복직 싸고 내부는 여전히 둘로 갈려
지난 13일 찾은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공장안과 밖은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우선 공장 안. 코란도C를 생산하는 1공장 벽면은 수많은 문구들로 가득했다. '혼을 담은 코란도C' '코란도C와 다시 태어난다'…. 한결같이 쌍용차의 트레이드마크 차량, 코란도에 대한 애정을 담은 표현이었다. 한 근로자는 "무결점 제품만이 모두가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 454명(징계해고자 포함 489명)이 회사로 돌아왔다. 4년만의 귀환이다. 참으로 길고 힘든 시간이었다. 2009년 4월 2,600명에 달하는 대량 감원발표 이후 장기파업과 유혈충돌, 대주주 교체(상하이차→마힌드라), 그리고 계속된 농성. 그 사이 회사는 망가져갔고, 근로자들은 지쳐갔다. 목숨을 끊거나 사망한 해고근로자와 가족만도 20명이 넘는다.
지난 1월 극적인 노사합의에 따라 이달 회사로 돌아온 무급휴직자들은 오랜만의 현업을 위해 현재 교육을 받고 있다. 정무영 상무는 "지난달 국내 완성차 5개사 가운데 우리만 유일하게 내수판매가 늘었다"면서 "복직 이후 회사분위기도 좋고 최근 코란도 투리스모 주문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는 만큼 앞으론 실적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쌍용차 여건이 그렇게 좋은 건 아니다. 경영 논리로만 본다면 무급 휴직자들을 복귀시킬 상황도 아니었다. 보통 자동차 공장은 2교대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지는데, 쌍용차는 아직 생산물량이 적어 3개 라인 모두 1개조만 투입된다. 지금 인력도 남아도는 상황인 셈이다.
복직근로자들은 교육이 끝나면 렉스턴, 코란도 스포츠, 수출용 액티언, 카이런 등 주력 차종을 생산해 그나마 작업량이 가장 많은 제3라인(3공장)에 투입될 예정이다. 3공장은 근무방식도 2교대로 전환되는데, 제한된 물량을 2개조가 나누다 보니 주 4회의 잔업은 없어지게 된다. 잔업중단은 곧 잔업수당지급이 중단된다는 뜻. 한 근로자는 "회사가 좋아질 수 있다면 좀 덜 받는 건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희망을 찾아가는 공장 안과 달리 공장 밖 분위기는 180도 달렸다. 적어도 이 곳에서만큼은 쌍용차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리해고자 복직과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118일째(17일 현재) 아슬아슬한 송전탑 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농성중인 한상균 전 노조지부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회계조작에 따른 정리해고의 부당함과 대책 마련을 위해서는 반드시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측 등이 제기한 430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도 정상화 앞에 놓인 중대 걸림돌이다.
무급 휴직자들이 돌아와 갈등의 한 축은 해소됐지만, 공장 밖 농성이 계속되다 보니 모두들 마음 속 응어리를 갖고 있는 듯 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공장 밖 옛 동료'를 보는 '공장 안 근로자'들의 시선도 갈리고 있다. 3공장에서 만난 한 근로자는 "다들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적어도 같이 살고자 한다면 우선 차 판매가 늘 수 있도록 (농성이나 국정조사 같은)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 복직근로자는 "국정조사는 안되더라도 정리해고자 150명 정도는 회사가 충분히 복직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4년 동안 회사는 저들과 대화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해고자들이 흘린 피눈물을 생각해 좀 전향적인 태도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쌍용차 관계자는 "회사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본다. 해고든 복직이든 개별기업의 문제지만 더 이상 불행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젠 커다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한진重, 영도조선소 르포도크 비고 용접소리도 뜸 "배 진수할때 희열 그립다"노조, 일감 따내기 위해 선주 면담 동분서주 불구 노사·노노 갈등은 잠복
대한민국 조선 1번지. 1937년 설립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철강선박을 건조하고 또 수출한 곳.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다.
하지만 옛 영화는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 2년간 영도조선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갈등의 장소였다. 2010년 12월 회사의 대량 해고와 이에 맞선 노조의 총파업, 그리고 309일간의 크레인 고膨撰? 정치권과 시민ㆍ사회단체가 가세하고 지루한 협상이 계속되길 1년여. 마침내 지난해 11월9일 정리해고자 92명의 재입사가 확정됐다.
그로부터 넉 달이 흘렀다. 지난 15일 찾아간 영도조선소는 의외로 평온했다. 농성천막도 플래카드도 없었고, 극한 대립의 상징이었던 높이 35㎙짜리 '85호 크레인'도 사라졌다.
그러나 평온이 곧 정상화를 뜻하는 건 아니었다. 조선소라면 철강재를 실은 트럭이 분주히 오가고 여기저기 용접 불꽃이 튀어야 하나, 영도조선소는 적막에 가까웠다.
가장 먼저 3,4도크가 눈에 들어왔다. 길이 301.8㎙, 너비 50㎙ 크기로 6,000TEU급 컨테이너선을 만드는 곳이다. 한 때는 두 도크에서만 연간 13척을 건조해 1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지금은 텅 비어 있다. 조선업 자체가 불황인데다 전투적 노사갈등으로 선주들이 발주를 기피하면서 2009년 9월 이후 수주가 전무한 탓이다.
회사도 근로자도 일단은 일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감이 없다 보니 모두가 지쳐가고 있다. 이날 생산현장에 투입된 근로자는 전체 조합원(751명)의 절반도 되지 않는 300명 남짓에 불과했다.
규모가 작은 2도크에서만 수송상륙함 선체 제작이 진행되고 있었다. 만약 방산물량마저 없었다면 아예 조선소 가동을 중단했을지 모른다. 24년차 엔지니어 최우평(49)씨는 "장기파업을 겪으며 차라리 정신 없이 바쁜 시절이 행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배를 완성해 진수할 때의 희열이 미치도록 그립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일감이 없는 450여명은 현재 유급 휴직 중이다. 이들은 기본급의 절반 정도(평균 220만원)만 받으면서 회사가 불러줄 날만 기다리고 있다.
입사 8년차인 문권욱(34)씨는 투쟁의 최선봉에 섰던 케이스다. 그러나 복직 출근 첫날 정확히 3시간 만에 유급휴직 통보를 받았다. 문씨가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50만원 정도. 그는 "해고자 신분일 때는 다른 일자리라도 알아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회사에 소속돼 4대 보험이 적용되다 보니 단순 일용직도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복직자 가운데 현업에 투입된 사람은 3명 뿐이다.
다행인 건 수주에 희망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영도조선소는 최근 유럽 선사와 3억달러 규모의 해양지원선 수주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4년만의 일감을 따내기 위해 김상욱 노조위원장이 외국선주와 면담을 자청, 납기ㆍ품질 보장 확약서까지 써줬다. 정철상 상무는 "국내 발전 5사가 발주하는 15만톤급 유연탄수송선 수주까지 따낸다면 내년 초쯤엔 조선소 가동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분위기는 좋아졌으나 노사간 앙금이 완전히 풀린 건 아니다. 복직 이후에도 사측의 노조탄압과 손해배상소송에 항의해 지난 겨울 근로자 최강서씨가 자살하고, 이른바 '시신 농성'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장기파업 와중에 조합원의 76%가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새 노조로 소속을 옮기면서 노노 갈등도 잠복한 상태다.
회사 관계자는 "오랜 갈등이 남긴 희생과 상처가 너무 크다"면서 "다시는 한진중공업과 같은 사태가 나지 않도록 노사정이 큰 틀에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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