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조선 1번지. 1937년 설립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철강선박을 건조하고 또 수출한 곳.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다.
하지만 옛 영화는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 2년간 영도조선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갈등의 장소였다. 2010년 12월 회사의 대량 해고와 이에 맞선 노조의 총파업, 그리고 309일간의 크레인 고공농성. 정치권과 시민ㆍ사회단체가 가세하고 지루한 협상이 계속되길 1년여. 마침내 지난해 11월9일 정리해고자 92명의 재입사가 확정됐다.
그로부터 넉 달이 흘렀다. 지난 15일 찾아간 영도조선소는 의외로 평온했다. 농성천막도 플래카드도 없었고, 극한 대립의 상징이었던 높이 35㎙짜리 ‘85호 크레인’도 사라졌다.
그러나 평온이 곧 정상화를 뜻하는 건 아니었다. 조선소라면 철강재를 실은 트럭이 분주히 오가고 여기저기 용접 불꽃이 튀어야 하나, 영도조선소는 적막에 가까웠다.
가장 먼저 3,4도크가 눈에 들어왔다. 길이 301.8㎙, 너비 50㎙ 크기로 6,000TEU급 컨테이너선을 만드는 곳이다. 한 때는 두 도크에서만 연간 13척을 건조해 1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지금은 텅 비어 있다. 조선업 자체가 불황인데다 전투적 노사갈등으로 선주들이 발주를 기피하면서 2009년 9월 이후 수주가 전무한 탓이다.
회사도 근로자도 일단은 일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감이 없다 보니 모두가 지쳐가고 있다. 이날 생산현장에 투입된 근로자는 전체 조합원(751명)의 절반도 되지 않는 300명 남짓에 불과했다.
규모가 작은 2도크에서만 수송상륙함 선체 제작이 진행되고 있었다. 만약 방산물량마저 없었다면 아예 조선소 가동을 중단했을지 모른다. 24년차 엔지니어 최우평(49)씨는 “장기파업을 겪으며 차라리 정신 없이 바쁜 시절이 행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배를 완성해 진수할 때의 희열이 미치도록 그립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일감이 없는 450여명은 현재 유급 휴직 중이다. 이들은 기본급의 절반 정도(평균 220만원)만 받으면서 회사가 불러줄 날만 기다리고 있다.
입사 8년차인 문권욱(34)씨는 투쟁의 최선봉에 섰던 케이스다. 그러나 복직 출근 첫날 정확히 3시간 만에 유급휴직 통보를 받았다. 문씨가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50만원 정도. 그는 “해고자 신분일 때는 다른 일자리라도 알아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회사에 소속돼 4대 보험이 적용되다 보니 단순 일용직도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복직자 가운데 현업에 투입된 사람은 3명 뿐이다.
다행인 건 수주에 희망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영도조선소는 최근 유럽 선사와 3억달러 규모의 해양지원선 수주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4년만의 일감을 따내기 위해 김상욱 노조위원장이 외국선주와 면담을 자청, 납기ㆍ품질 보장 확약서까지 써줬다. 정철상 상무는 “국내 발전 5사가 발주하는 15만톤급 유연탄수송선 수주까지 따낸다면 내년 초쯤엔 조선소 가동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분위기는 좋아졌으나 노사간 앙금이 완전히 풀린 건 아니다. 복직 이후에도 사측의 노조탄압과 손해배상소송에 항의해 지난 겨울 근로자 최강서씨가 자살하고, 이른바 ‘시신 농성’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장기파업 와중에 조합원의 76%가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새 노조로 소속을 옮기면서 노노 갈등도 잠복한 상태다.
회사 관계자는 “오랜 갈등이 남긴 희생과 상처가 너무 크다”면서 “다시는 한진중공업과 같은 사태가 나지 않도록 노사정이 큰 틀에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산=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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