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첫 책을 낸 게 2005년이니까, 올해로 벌써 9년째다. 무명저자에서 소위 ‘전업작가’가 되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책으로 먹고 살기, 크게 욕심 부리지 않으면 그럭저럭 살아갈 정도는 된다. 그러다 보니 출판계 내부의 이런저런 얘기들을 좋든 싫든, 나도 얻어듣게 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 불편한 얘기가 바로 도서 사재기에 대한 얘기다. 방식이야 여러 가지지만, 어쨌든 출판사에서 자신들이 낸 책을 사서,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한다는 거다. 10년 가까이 계속 들어온 사재기가 최근에 더욱 논란거리가 되었다. 사재기가 늘어난 건지, 아니면 출판계 상황이 워낙 어려우니까 이것도 문제 삼게 된 건지, 지금으로서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어쨌든 그 어느 때보다 사재기에 대한 원성이 높아진 게 지금이라는 건 사실인 듯싶다. 출판인회의 신임 회장의 첫 일갈이 “사재기를 근절하겠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모든 시장에서 생산과 유통이 구분되듯이, 책에서도 그렇다. 유통에서 사재기를 막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금방 막을 수 있겠지만, 당장 매출액이 늘어나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겠나. 걸리지만 않는다면, 유통에서 이걸 목숨 걸고 막아야 할 경제적 이유는 별로 없다. 그렇다고 생산자들이 스스로 막는다?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경쟁이고,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마케팅인가, 이걸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당신은 사재기 안 하는가?’, 이런 식의 서로 침 뱉기 양상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출판계 관계자들이 어느 정도는 알고는 있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잡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공공연하게 사재기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면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모든 베스트셀러에 대한 독자들의 불신을 일으킬 위험이 있어서, 정말로 독하게 마음 먹기 전에는 문제 제기하기도 쉽지 않다. 정말 신뢰 있는 내부 고발자가 없다면, 깜박하면 무고죄가 될 위험이 크다.
아무리 제도를 강력하게 만들어도 숨어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일을 모두 막기는 어렵다. ‘고스트 라이터’라고 부르는 대필 문제를 제도만으로 막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제도가 생기면 또 새로운 수법이 생기고, 바로 이익이 보이는데, 그걸 하지 말라고 양심에만 호소하기도 어렵다. 프랑스처럼 베스트셀러를 아예 발표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올림픽에도 순위를 매겨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에서 당장 이렇게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이고.
이 문제에 대한 제일 점잖은 해법은, 작가들과 저자들이, 자신의 책은 사재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방식이다. 책에서는 저자가 생각보다 많은 권한을 가지며, 무엇보다도 1차 생산자이기 때문에, 저자가 강경하게 사재기를 반대하면 생각보다 쉽게 이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저자는 사재기에 대해서 경제적으로는 반대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 팔리든 저렇게 팔리든, 자신에게 들어오는 인세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재기가 명예로운 일은 아니다. 저자에게는 명예를 지키는 일이 생각보다 중요할 수 있다.
내가 사재기에 반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작지만 탄탄한 중견 출판사가 사재기 폭풍에서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것은 안 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은 투전판에서나 벌어져야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 사재기 열풍이 불다 보니, 이미 충분한 명성도를 가진 저자들만 살아남고 새로운 저자가 데뷔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진경이나 유시민이나, 그야말로 글 빨 하나 가지고 책으로 스타가 된 사람들이다. 한국에는 더 많은 저자가 등장해야 하고, 그게 바로 문화 경제 혹은 창조 경제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선언한다. “저는 도서 사재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작가와 저자들에게도 호소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재기를 안 하는 저자들의 자발적 선언이 늘어나면,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린다. 자신의 명예만이 아니라, 작은 출판사 그리고 새로운 저자를 위해서 동참해주시기를 호소한다.
우석훈 타이거 픽쳐스 자문ㆍ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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