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될 것을 촉구하는 뜻에서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로부터 즉위명을 따왔다고 밝혔다. 교황으로서 집전한 첫 미사에서 영적 쇄신을 역설한 데 이어 다시금 강력한 교회 개혁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교황은 16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교황에 선출됐을 때 옆에 있던 클라우디오 우메스 브라질 추기경이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말라'고 내게 말한 순간 가난하고 평화로웠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떠올렸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이어 감탄조로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라니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말했다. 교황은 "바티칸의 관료주의를 개혁하기 위해 위대한 교회 개혁가였던 교황 아드리아노 6세의 즉위명을 잇거나 (교황이 소속된 수도회인) 예수회를 탄압한 클레멘스 14세에 복수하는 뜻에서 클레멘스 15세를 택하라는 추기경들의 추천이 있었다"고 농담도 건넸다.
교회의 본분을 강조하는 교황의 발언이 이어지면서 교회 개혁의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교황은 신앙관은 보수적이지만 신앙 외적으로는 빈곤 등 사회문제 해소를 강력히 주장하는 등 행동파의 면모를 보여줬다. 예수회 수사인 조지프 맥셰인 미국 포드햄대 학장은 교황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로 재직할 당시 혼외 출생자에 대한 세례를 거부하는 신부들을 바리새인(율법주의자)이라고 맹비난했던 일을 거론하며 "교회 개혁을 감당할 만한 용기를 지닌 분"이라고 평했다.
핵심 개혁대상은 쿠리아(교황청 행정기구)다. 특히 교황청 금고인 바티칸은행 관리 등 실권을 행사하는 국무장관에 누구를 앉히느냐가 개혁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BBC방송은 "교황은 전임 베네딕토 16세와 달리 측근이 없어 행보가 자유롭다"고 분석했다. 결속력이 강하면서도 쿠리아와는 불편한 관계인 예수회가 교황의 든든한 후원세력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교황의 정치력에 주목했다. 2005년 콘클라베 당시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은 것으로 알려진 교황이 '직전 콘클라베 2위 득표자는 교황 후보에서 배제한다'는 암묵적 관행을 영민하게 극복했다는 것이다.
교황은 쿠리아의 인적 개편을 위해 추기경단에서 적임자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교황청은 "교황이 바티칸 고위 관료들을 당분간 유임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해 개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교황은 23일 베네딕토 16세와 만난다. 교황청 내부의 권력 암투 및 비리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베네딕토 16세가 후임 교황에게 어떤 조언을 할 지가 주목된다. 교황은 15일 추기경단과의 회동에서 "신대륙 및 예수회에서 처음 교황이 탄생하도록 한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은 용기 있고 겸손한 행동"이라며 "그의 정신적 유산은 영원할 것"이라고 칭송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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