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대북 전단을 실은 오색 문구점 풍선들이 떠올랐다. 한 달 전 창립한 탈북자단체인 북한민주화운동본부가 벌인 이 대북 선전활동은,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를 향해 제 목소리를 낸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들의 풍선은 점차 커져 최근엔 높이 12m에 이르는 대형 애드벌룬이 됐고, 그들의 활동은 탈북자들의 강경보수 이미지를 강화하고 일반화하는데 일조해왔다.
하지만 지난 세기말 이후 탈북자가 늘면서 탈북자 단체 역시 급증했고, 성격도 다채로워졌다. 심지어 난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편에서는 시민사회 일반의 성장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 과정과 실태를 우선 살펴보자.
탈북자 단체 급증 배경은
현재 통일부에 등록된 탈북자 단체는 61개. 그 가운데 2000년 이전 설립된 단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1980년 최초의 탈북자 단체로 설립된 숭의동지회, 1999년 황장엽씨를 중심으로 결성된 탈북자동지회 등이 이에 속한다. 탈북자단체가 급증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한 해에도 몇 개씩 북한, 통일, NK 등이 들어간 간판을 내건 단체들이 탄생했다.
1차적 배경은 탈북자의 증가다. 1998년까지 모두 합쳐 1,000명이 채 안 되던 탈북자 수는 2000년대 중반에는 한 해에만 2,000명을 넘어섰다.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과거 탈북자들은 군인 출신의 20~40대 독신 남성이 대부분이었는데 탈북자 수가 늘면서 학력, 성별 등 사회경제적 배경이 다양해졌다"며 "단체장이나 회원이 될 수 있는 인력풀이 생기면서 이런저런 단체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 물꼬가 트인 영향도 크다. 2004년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면서 북한 민주화 및 인권단체들에 대한 자금 지원이 가능해진 것이다. 2005년 북한민주화운동본부가 미 국립민주주의기금(NED)으로부터 7만5,000달러의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시작으로 자유북한방송, 탈북여성인권연대, NK지식인연대 등이 NED 지원금을 받았다. 통일부도 2010년 산하에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을 설립, 탈북자 단체를 간접적으로 도왔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은 탈북자 단체의 사업을 선정해 건당 최대 400만원까지 지원하는데, 지난해 민간단체 협력 예산은 7억2,000만원이었다.
탈북자 단체의 분화
사실상 관변단체인 초기 탈북자 단체의 활동은 친목과 안보 교육에 편중됐다. 북한 인권을 내세우더라도 탈북을 돕는 데 치중했다. 그 성격이 분화ㆍ변화하기 시작한 것도 2000년대 이후부터다. 기존 단체 내 일군의 활동가들이 한국 사회 및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 실태 등을 고발하면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2003년 6월 북한 수용소 해체 등을 주장하며 출범한 북한민주화운동본부가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주역인 강철환씨는 "그 해 4월 노무현 정권이 유엔 북한인권규탄 결의안 투표에 불참하는 것을 보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을 대변하려면 관변 단체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7년부터 (한국 사람이 세운)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활동가로 일해왔다.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김성민씨는 2003년 4월 대북 방송 단체인 자유북한방송을 발족했다. 김성민씨는 "그때까지 탈북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단체는 거의 없었다"며 "우리가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단체를 만드는 것을 보고 다른 탈북자들이 자신들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탈북자 단체의 북한 인권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들이 남북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관심 밖에선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탈북자 단체가 형성되고 있었다. 김계동 연세대 통일연구원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2004년 이후 만들어진 탈북자 단체 44개 중 북한 민주화와 인권에 목적을 둔 단체는 15개로 34%에 그친다. 2000년대 중반 탈북자 중 여성의 비중이 60%를 넘어서면서 탈북여성인권연대, 하나여성회 등 여성단체도 결성됐다. 평양민속예술단 등 공연을 통해 자활을 추구하는 단체도 여러 개 만들어졌고 음식에 초점을 맞춘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도 등장했다. 또 북한인권 개선을 추구하면서도 행동보다는 학술연구에 무게를 둔 NK지식인연대,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등도 만들어졌다.
난립인가, 성장인가
성격이 비슷하고 이름도 헷갈리는 단체들이 동시다발로 등장하자 탈북자 단체의 난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탈북자 사회가 비정부기구(NGO)를 뒷받침할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우상호(민주통합) 의원은 "한 사람이 4개의 단체를 만들어 정부의 중복 지원을 받았고 한 개 단체가 갖가지 명목으로 여러 차례 지원을 받은 사례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한 탈북자 단체 관계자도 "회비를 낼 정도로 의식이 있거나 여유가 있는 탈북자가 많지 않은데 비슷한 단체들이 여러 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서로 대표를 하려고 하는 등 탈북자 간 주도권 경쟁도 이런 현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을 탈북자사회의 특수한 문제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서재평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은 "남한에도 비슷한 성격의 여러 단체가 존재한다"며 "지금은 단체가 정립돼 가는 시기"이라고 말했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도 "(현재의 혼란은) 관변단체만 존재하다가 다양화 다원화하면서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현상"이라며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NGO가 겪어온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자 사회의 확대와 함께 단체 활동 역시 성숙해져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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