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혹시 시쿠 부아르키(69)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1964년 데뷔해 60여장의 음반을 펴낸 '브라질의 조용필'. 대중적 리듬과 서정적 가사로 인기를 얻은 보사노바의 거장이다.
허나 그에게는 또 하나의 빛나는 면류관이 있으니, 바로 포르투갈어 문학계 최고의 작가라는 타이틀이다. 유명 사학자이자 언론인이었던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브라질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자란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문학을 공부했고, 2003년 쓴 소설 로 브라질의 맨부커상이라 불리는 자부치상을 거머쥔다. 국내에 첫 소개되는 그의 소설 는 작가에게 두 번째 자부치상을 안겨준 대표작이다.
소설은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100세 노인 에우라리우의 독백으로 구성돼 있다. 횡설수설하며 스스로 진술을 번복하고 부정하기도 하지만, 서사의 핵심 축은 첫사랑이었던 아내 마틸지의 홀연한 실종이다. 그의 생애는 마틸지와의 삶과 마틸지 이후의 삶으로 크게 두 동강 난다. 80년간의 그리움과 기다림에는 질투와 불신, 분노와 절망, 의심과 회의가 끈끈한 먼지뭉치처럼 곳곳에 들러붙어 있다.
소설은 이 지독한 러브스토리에 브라질의 어두웠던 식민지 역사를 끼워 엮는다. 유력 정치인 가문의 아들이었던 에우라리우가 평생의 여인으로 사랑했던 마틸지는 백인 농장주와 그의 성적 노리개였던 흑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뮬라토였다. 100년에 걸친 브라질 근대사 속에서 뮬라토들이 대를 거듭해 빈민으로 전락하는 과정과 이에 저항하는 투쟁, 독재정권의 탄압 등이 1인칭의 서술로 장대하게 펼쳐진다.
한 마디 말도 없이 딸과 남편만 남겨두고 사라진 아내의 마지막은 토하듯 세면대에 몸을 숙이고 젖을 짜던 모습이었다. "세면대 주위에는 모유 방울들이 흩어져 있었고 공기에는 모유 냄새가 배어 있었다." 마틸지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비밀과 그 죽음의 비밀을 알게 된 자의 회한이 읽는 이의 가슴에 아련하게 남는다.
"나는 영원한 삶을 믿고 싶다. 마틸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아직도 굳게 믿고 있다. 한때 꽤나 말쑥했던 청년이, 십대의 마틸지에 비해 이렇게나 노쇠한 상태로 영원으로 나아가는 것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179쪽)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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