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우 박시후가 지난달 15일 성폭행 혐의로 A씨에게 피소된 뒤 4일 무고ㆍ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를 한 가운데 분쟁의 불똥이 전 소속사 대표 B씨에게로 튀었다. 박시후는 B씨가 A씨와 만나 "박시후를 경찰에 고소하라"고 부추겼다며 B씨를 공갈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B씨는 11일 박시후를 다시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다. 14일 현재 박시후, A씨, B씨는 모두 피의자 신분이다. 박시후와 B씨가 대표로 있는 이야기엔터테인먼트는 1월 말 전속계약이 끝난 상태였다.
#2. 연기자 강지환은 전속계약과 관련해 두 회사와 연속으로 분쟁을 벌였다. 2009년 말 그는 당시 소속사였던 잠보엔터테인먼트에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에스플러스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해 중복계약 소송에 휘말렸다. 이 분쟁은 이듬해 종료됐지만 2년 만인 지난해 말 강지환은 에스플러스와 계약 종료를 앞두고 법무법인 에이펙스와 법률자문계약을 맺으며 다시 한 번 소속사와 소송에 휘말렸다. 지난달 28일 법원은 에스플러스가 강지환을 상대로 낸 연예활동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지만 양측의 법정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연예인과 소속사의 분쟁 소식. 이제는 연예계 뉴스의 단골 레퍼토리가 됐다. 매니지먼트 산업이 구멍가게 수준에서 기업화된 지 오래지만 매번 이름만 바뀔 뿐 비슷한 내용의 소송이 반복되고 있다. 연예계 일각에서는 박시후와 전 소속사 대표 B씨의 갈등도 재계약 불발 과정에서 남은 오해가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이야 어쨌건 계약을 막 마친 기획사 대표와 연예인이 반목하는 것은 썩 보기 좋은 풍경이 아니다.
연예인과 기획사가 자꾸 갈등하는 것은 왜일까. 현업에 종사하는 매니지먼트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원론적인 답을 내놓는다. '인간적인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 '함께 일을 하면서 인간적인 신뢰를 쌓을 만큼 충분한 대화를 주고받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계약 내용이 불투명해서 분쟁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C기획사의 대표는 "계약서를 쓰지 않고 구두 계약만으로 일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가 권고한 표준계약서에 따라 계약을 한다"며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이라도 한쪽에서 트집을 잡으면 얼마든지 소송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계약 하나만으로도 수억원이 오가는 경제 활동에서 '인간적인 신뢰'가 가장 중요시되는 건 국내 매니지먼트 산업의 특수성 때문이다. 미국 연예계는 사업적인 면을 담당하는 에이전시와 개인적인 일을 맡아서 하는 매니저의 업무가 나뉘어져 있고 그 속에서도 세분화된 분야마다 담당자가 따로 있다. 일례로 대변인 역할만 하는 사람이 있고, 재정 관리만 맡는 사람이 있다. 에이전시는 연예인, 작가, 감독들과 계약해 이들에게 업무를 알선해 주고 계약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일본 연예계는 이와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처럼 기획사가 에이전시와 매니지먼트를 겸하며 투자와 교육을 담당하고 심지어는 사생활까지 엄격히 관리한다. 한국과 다른 점은 평생 직장 또는 가족 같은 의미의 소속 관계라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연예인이 소속사를 옮기는 일은 흔치 않고 불미스러운 일로 계약을 마쳤을 때는 다른 기획사에 들어가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기획사의 막강한 힘이 늘 스타 위에 있기 때문에 전속계약 분쟁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비즈니스에서 분쟁이 생기는 대부분의 이유는 돈이다. 우리나라 매니지먼트 산업은 시스템이 안정화되기도 전에 비약적인 양적 성장을 이뤘다. '한류'가 이 같은 불균형을 부채질했다. 한류스타 D씨가 소속된 기획사에서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E씨는 "한류와 우회상장이 끼어들면서 거품이 생겼고 기획사 간의 경쟁이 불합리한 계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며 "한국만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표준계약서에 따라 이성적으로 명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한편 인간적인 신뢰를 쌓아야 이 같은 분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니지먼트 업무에 대해 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은 면허가 있는 에이전시만 일을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선 연예 매니저로 활동하려면 매년 노동부로부터 허가증을 갱신해야 한다. 노동부가 구성한 위원회는 법적, 도덕적 문제가 있는 매니저에 대해 허가증 갱신을 거부할 수 있다. 무분별한 연예기획사 난립으로 인한 연예인 지망생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 역시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의 김길호 사무국장은 "연예기획사 허가제 전환을 위한 노력을 3년 넘게 하고 있지만 국회에선 여전히 관심 밖"이라며 "오디션 열풍으로 연예인 지망생들이 늘어나면서 사기 피해자도 늘고 있어 허가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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