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랭킹 54위의 선수가 순위표 가장 높은 곳에 이름을 올렸다. 피겨 강국 일본과 미국, 유럽 선수들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최근 3년 간 국제대회 성적을 점수로 환산해 세계 랭킹 순위를 매긴다. 1위는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ㆍ4,949점), 2위 스즈키 아키코(일본ㆍ4,254점), 3위 아사다 마오(일본ㆍ3,556점)다. 하지만 2013 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시니어 싱글 쇼트프로그램 1위는 한 동안 빙판을 떠났다가 작년 말 돌아온 세계랭킹 54위 김연아(23ㆍ1,006점)였다.
김연아가 2년 만에 출전한 세계선수권에서 여왕의 귀환을 알렸다. 김연아는 15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 버드와이저 가든스에서 열린 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TES) 36.79점에 예술점수(PCS) 33.18점을 합쳐 69.97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디펜딩 챔피언'코스트너(66.86점), 3위는 무라카미 가나코(일본ㆍ66.64점)였다. 김연아는 17일 오전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프리스케이팅에서 큰 실수만 없다면 2009년 LA 세계선수권 이후 4년 만에 우승할 공산이 크다.
압도적인 기량 선보여
김연아는 이날 작은 실수를 두 차례 범했지만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3번의 점프와 스핀, 한 차례의 스텝으로 구성된 프로그램 기본 점수는 다른 선수들 보다 월등히 높았다. 엉덩방아를 찧고 점프 회전이 모자라는 등의 큰 실수도 없었다. 여기에 35명의 선수 중 전반부인 14번째로 연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오히려 긴장감 없이 편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계기가 됐다.
영화 '뱀파이어의 키스'의 삽입곡에 맞춰 양팔을 휘저으며 연기를 시작한 김연아는 첫 과제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기본점 10.10점)를 완벽하게 뛰어올랐다. 3바퀴를 연속으로 도는 이 고난도 점프는 김연아와 함께 러시아의 '특급 유망주' 엘리자베타 뚝타미쉐바(17) 정도만 구사할 줄 안다. 심판들은 도약부터 착지까지 교과서적인 완벽한 점프에 1.40점의 높은 수행점수(GOE)를 안겼다.
하지만 두 번째 점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이 나왔다. 연기를 이어간 김연아는 기본점수 5.30점짜리의 트리플 플립(기본점 5.30점)을 깔끔하게 뛰었지만 심판들은 롱에지 판정(0.20점 감점)을 내렸다. 점프를 하는 과정에서 스케이트 날의 안쪽 에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바깥쪽 에지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김연아는 이후 플라잉 카멜 스핀에서도 레벨 4(기본점 3.20점)를 받지 못하고 레벨 3(기본점 2.80점)을 받았다.
그러나 피겨 여왕은 흔들리지 않았다. 더블 악셀을 포함해 레이백 스핀, 스텝 시퀀스, 체인지풋 콤비네이션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마지막 점프인 더블 악셀(기본점 3.30점)은 경기 시간이 1분25초가 지난 뒤라 10%의 가산점을 얻어 3.63점이 됐고, GOE도 0.86점을 더했다. 김연아가 연기를 마치자 관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반면 우승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됐던 아사다는 기술점수(29.70점)에서 김연아에게 7.09점 뒤지고 예술점수(32.40점)마저 0.78점 처지면서 7.87점차로 6위(62.10점)에 그쳤다.아사다는 자신의 필살기인 첫 점프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반)에서 기본점 8.50점 외에 0.14점의 GOE를 얻으며 선전했으나 마지막 점프 과제인 트리플 루프(기본점 5.10점)를 한 회전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무려 4.85점이나 감점을 당했다. 은퇴를 선언했다 복귀한 코스트너는 무리 없이 연기를 마쳤지만 점프의 난도가 낮아 김연아에 뒤질 수밖에 없었다.
17일 프리스케이팅 관전포인트
김연아는 17일 오전 11시46분께 프리스케이팅을 연기한다. 쇼트 프로그램을 마친 뒤 곧바로 진행된 조추첨에서 24번을 뽑아 4조 6번으로 연기하게 됐다. 대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순서로 수 많은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이지만 얼음 상태가 좋지 않다는 단점도 있다.
만약 김연아가 이날도 좋은 연기를 펼쳐 2위 안에 든다면 한국은 2014 소치동계올림픽 출전권을 3장이나 얻게 된다. 이는 한국 피겨 사상 처음으로 1968년 프랑스 그레노블 올림픽부터 2010 밴쿠버 올림픽까지 세 명이 출전한 적은 없다. 김연아 역시 이번 대회를 앞두고 "후배들에게 큰 무대를 경험할 기회를 주고 싶다"며 최소한 두 장 이상의 출전권을 따내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프리스케이팅의 관전포인트는 점프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3번의 점프를 뛰었다면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7번의 점프를 소화해야 한다. 고성희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사는 "충분한 연습을 통해 점프 높이가 상당히 좋아졌다. 김연아의 등장으로 다른 선수들이 점프와 스텝 등 프로그램 구성 난도를 높이고 있지만 김연아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며 "7번의 점프를 뛰는 데 체력적인 문제는 없다"고 했다. 김연아는 가장 최근 대회인 지난 1월 종합선수권에서 7번의 점프를 완벽하게 성공하며 합계 145.81점을 받았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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