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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여는 끝장토론보다 오케스트라처럼 귀를 열고 소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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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여는 끝장토론보다 오케스트라처럼 귀를 열고 소통하라

입력
2013.03.1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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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2009년 내놓은 '구글웨이브' 서비스를 1년 반 만에 중단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면서 메신저도 되고 이메일로도 활용 가능한 이른바 통합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업을 왜 접었을까. 기대와 달리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었다는 설명은 현상을 묘사한 것일 뿐이다. 왜 이용자가 적었을까. 에릭 슈미트 회장조차 "모르겠다"고 말한다.

영국 정경대, 미국 뉴욕대 교수인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70)이 내놓은 답은 이렇다. '사람들은 더 대화적인 종류의 협력을 원했을 뿐이고, 그 프로그램은 정보 공유를 소통이라고 착각한 것이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인지도 모른다. 정보 공유는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는 훈련인 반면 소통은 말로 표현된 것 못지않게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에도 관련된다. 시각이 지배하는 구글웨이브 같은 온라인의 교환에서는 아이러니나 의혹을 전달하기 힘들어진다.'

세넷의 신간 는 출중한 대중적인 글쓰기 능력을 갖춘 일급의 사회학자가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현대사회를 향해 던지는 제언을 담고 있다. 책에서 말하려는 것은 현대사회가 점점 소통불가능으로 치닫고 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로, 이기주의 못지 않게 이타주의 역시 인간의 본성이며 서로 돕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사회를 윤택하게 또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지를 역설하는 책이 숱하게 쏟아져 나와 있다. 이 책이 그런 책들과 다른 점은 '협력'이라는 원칙을 말하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어떤 협력을 선택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세넷은 현대사회가 갈수록 불통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커지면 커질수록 계층이 다른 사람들끼리 일상의 경험을 공유하기 어려워진다.'2000년에 직장에 들어간 젊은이는 평생 노동하는 동안 12번에서 15번 가량 고용주를 바꾸게 될 것'이라는 전망처럼 비정규직 일자리가 정규직을 대신하는 추세가 강화될수록 조직 내에서도 사회적 관계는 피상적이 되고 서로에게 애착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차이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을 줄이려는 현대사회의 문화적 압력도 협력을 무너뜨린 데 한몫 한다. 프랜차이즈형 패스트푸드점이나 호텔, 판박이 형태의 대중음악의 확산 같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현대 사회는 좁혀지기 힘든 차이를 다루는 기술을 상실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세넷은 협력을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반응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화의 기술이고 잘 듣는 기술이다. 단지 상대방의 말을 해석하는 기술일 뿐 아니라 그의 동작과 침묵까지 파악하는 기술이다. 그리고 공감보다 감정이입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당신의 고통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보다 당신의 고통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냥 동화하는 것보다, 다양성의 원천이며 사회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차이를 인정한 위에서 타인의 고통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더 강력한 실천이라는 것이다.

줄리어드 음악학교를 졸업한 첼리스트이자 지휘자로도 활동한 이 사회학자는 이 같은 협력의 상황을 오케스트라 리허설에 비유한다. 오케스트라는 자기 파트만 완벽하게 연주해서는 안 된다. 다른 연주자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기를 깨뜨려서도 곤란하다. 그러면 음악은 아주 지루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의 음색이나 운궁법을 놓고 때로는 갈등하기도 하는 서로 다른 목소리로 말하는 개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끝장 토론이 아니라 타인의 말을 잘 들을 줄 아는 자세가 중요하다. 풍요로운 토론은 의견의 불일치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런 불일치 때문에 대화가 중단되지 않는 것이다. 타인이 말하려는 구체적 내용들에 집중해 듣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견해와 경험들에서 또 다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같은 주장을 저자는 사회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등의 이론과 중세의 길드, 종교개혁, 파리 코뮌, 페이스북 친구 맺기 등 다양한 사례를 동원해 설명했다.

구글웨이브는 비록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21세기형 소통의 기대주는 SNS다. 거기서 대안적인 '협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저자는 아니라며 영국 작가 사라 베이크웰의 (책읽는수요일 발행)에 나오는 한 대목으로 답을 대신한다. '온라인상의 21세기는 자신감의 화신들로 가득 차 있다. 블로그와 트위터에서 온라인의 대양을 30분만 헤쳐나가다 보면(…)자신들의 성격에 매혹되고 관심을 보이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을 수천 명 만나게 된다.'

현암사가 인문학ㆍ사회학적 상상력이 넘치면서 탁월한 대중적 글쓰기를 보여주는 국내외 학자들의 책으로 기획한 'HN 논픽션 신서' 첫 권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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