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동화 속 인물을 심층심리학으로 들여다본 책이다. 정신분석을 공부한 독일 심리상담가인 저자는 프로이트와 융의 심층심리학을 통해 19세기 독일의 그림 형제가 엮은 '그림 동화'에서 우리의 삶과 성격을 결정짓는 정신의 원형적 체험을 추적한다.
분석 대상은 여러 버전으로 재생된 동화 네 편이다. 신데렐라, 콩쥐팥쥐 등의 원형인 '재투성이' 이야기는 계모 밑에서 학대받는 소녀가 왕국에 입성하기까지 다룬 성공 스토리다. 재투성이라는 이름은 재를 뒤적이고 재 속에서 뒹구는 부엌데기, 천하고 더러운 여자아이라는 뜻이다. 책에서는 재투성이를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짓눌린 채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소녀로 보고, 숨겨진 모습을 파헤친다.
재투성이에게 아버지는 자신을 돌봐줄 구세주이면서 굴종할 수밖에 없는 엄격한 인물이다. 친엄마에 대해서도 매달리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모순된 감정을 느낀다. 때문에 계모에게 저항은 못하지만 특별히 잘 지내려 노력을 하지도 않은 채로 반항심 가득한 아이로 자란다. 왕자에게서 세 번이나 도망치는 행위 역시 피폐한 환경에서 자라 누구에게도 솔직히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다 보니 생긴 자괴감에서 기인한다. 늘 환영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아온 이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동화에서 관용구처럼 뿌리내리고 있는 '악독한 계모'의 형상에 대해서도 한번쯤 재고해 볼 것을 권한다. 보통 동화에서 계모는 자식을 데리고 나이 많고 부유한 남자와 재혼하는데 그때 계모가 바라는 것은 자신의 아이들의 안위와 경제적 풍요로움 같은 실속이다. 그런데 자칫 재산을 다 차지할 수 있는 남편의 자식이, 그것도 죽은 엄마에 대해 고결한 애도의 태도를 취하며 고독한 침묵 속에서 자신을 밀어내는 아이에게 정이 가겠냐는 것이다. 동화 속에는 생략된 채로 넘어가지만 계모를 단호히 거부하는 아이에게서는 비판적 태도와 공격적 반항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결국 나쁜 계모의 몰락을 고하고 자신의 집을 되찾는 것으로 끝나는 동화를 계모의 관점에서 보자면 처절한 패배로 계모의 경계가 근거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도마에 오르는 다른 세편의 이야기는 '가시장미 공주', '라푼첼', '영리한 엘제'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로 알려진 '가시장미 공주'가 100년 간이나 긴 잠에 빠진 채 자신을 깨울 왕자님만을 기다리는 것은 딸이 여성으로 자라는 것을 꺼리는 아버지의 어긋난 사랑 때문에 무기력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마녀에 의해 탑에 갇힌 '라푼첼'은 사실 자식의 운명을 조종하려 드는 어머니와 딸의 부정적인 관계로, '영리한 엘제'는 아버지의 기대 때문에 늘 버거운 짐을 져야 했던 영리하지 못한 엘제의 딜레마로 접근한다.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해석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철학, 심리학, 신학을 넘나드는 탄탄한 지적 기반으로 그 틈을 메운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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