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쓰리랑 부부 출연이 국악 대중화 큰 몫 했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쓰리랑 부부 출연이 국악 대중화 큰 몫 했죠"

입력
2013.03.14 12:06
0 0

“제게 판소리의 길을 크게 열어주신 스승 만정 김소희(1917~95) 선생님과 저를 믿고 따라주고 있는 20여 명의 제자들에게 이제야 면목이 서게 됐습니다.”

14일 문화재청으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로 인정받은 국악인 신영희(71)씨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목 메인 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신씨는 “61년 동안 판소리를 하면서 옆 눈을 팔지 않고 제 갈 길만 걸어온 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 들고,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는 열 살 때 고향 전남 진도에서 판소리 명인으로 불리던 아버지(신치선)가 제자를 가르치는 걸 귀동냥하면서 국악에 발을 들여놓았다. 16세 때 부친이 작고하자 국악활동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77년 남원춘향제 명창부 대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92년엔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춘향가 준문화재가 됐다. 그렇지만 신씨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국악 붐을 일으키게 된 계기는 역시 20여년 전 TV 코미디 프로그램 ‘쇼비디어자키’의 ‘쓰리랑 부부’코너 출연이었다. ‘쓰리랑 부부’에서 신씨는 일자눈썹의 ‘순악질여사’ 김미화와 ‘공처가 남편’ 김한국과 함께 등장해 소리로 흥을 돋웠다. 잊혀져 가던 국악을 대중화시킨 것이다.

“당시 ‘쓰리랑 부부’에 출연하자 국악인은 물론 문화재 관련 공무원으로부터 ‘판소리 전수자가 그런 코미디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는 질책도 들었어요. 그러나 그 프로그램에서 북치고 소리하는 저를 자주 접하면서 사람들의 눈과 귀가 국악에 익숙하게 됐다고 자부합니다.”

신씨는 “스승인 김소희 선생님의 만정제류 춘향가 보급과 함께 후학들을 가르치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내놓았다. 고희를 넘겼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비결을 묻자 “매일 아침 스트레칭과 되도록 집에서 밥을 먹고, 집(서울 송파구 방이동) 근처 공원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 것으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한다”고 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로 김청만(67)씨, 제29호 서도소리 보유자로 김경배(54)씨, 제106호 각자장(刻字匠) 보유자로 김각한(56)씨를 각각 인정했다. 또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 보유자 이근화선(89), 제27호 승무 및 97호 살풀이춤 보유자 이매방(86), 제34호 강령탈춤 보유자 김실자(85), 제41호 가사(歌詞) 보유자 이양교(85), 제92호 태평무 보유자 강선영(88)씨는 명예보유자로 인정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