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도 알다시피 콘클라베는 로마에 주교를 앉히는 일입니다. 동료 추기경들이 그 사람을 찾으려 지구 저편 끝까지 갔다 온 모양입니다."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나타난 새 교황이 모국어(스페인어) 섞인 라틴어로 던진 농담에 환영객 수만명의 웃음소리가 바티칸 밤하늘에 퍼졌다. 전세계 12억 신도를 거느린 가톨릭 교회는 13일(현지시간) 오후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76) 아르헨티나 추기경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16세가 건강상 이유로 퇴위한 지 13일, 콘클라베 개시 이틀 만에 이뤄진 결정이다. 즉위명은 프란치스코.
가톨릭 역사상 길이 기억될 특별한 선택이다. 자신을 '로마 주교'로 한껏 낮추는 새 교황의 겸손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유럽이 독식해온 교황직에 오른 첫 남미 출신 인사다. 비유럽권 교황은 시리아 출신인 그레고리오 3세(재위 731~741) 이후 1,282년 만이다. 첫 예수회 소속 교황이라는 점도 사건이다. 가톨릭의 대표적 남성 수도회로 설립 479년을 맞은 예수회는 영성, 헌신 등 근본적 신앙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이 파격적 인선을 한 외신은 "가톨릭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남반구로 손을 뻗었다"고 표현했다. 세속주의의 확산으로 교세가 꺾인 가운데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바티칸은행 돈세탁 의혹, 교황청 내부문건 유출 등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은 가톨릭이 청렴함으로 이름 높은 남미 출신의 수사(修士)를 수장으로 세워 위기 타개에 나섰다는 것이다.'지구 저편 끝'에서 적임자를 찾아야 했던 절박한 사정이 있는 셈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제 우리 여행을 시작합시다"라는 말로 소명을 받들 뜻을 밝혔다. 그 여행은 "박애와 사랑, 믿음의 여행"이라고 교황은 부연했다. 이날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서 축복을 전하는 '우르비 엣 오르비(바티칸시와 전세계에서)'로 첫 공식일정을 치른 교황은 14일 바티칸 시스티나성당에서 추기경들이 참석하는 축하 미사를 집전한다. 교황 즉위 미사는 19일에 열린다.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와의 만남도 조만간 이뤄질 예정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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