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단편소설 의 주인공 조만득씨는 가난한 이발사이며 마음씨가 착하고 성미가 무던한 효자다. 이런 조만득 씨가 과대망상성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병인은 그의 궁핍한 현실 환경이 주는 박해의 불안과 공포이다. 긴 세월을 반신불수로 누워 지내는 노모, 경제적으로 못난 형을 협박하면서 돈을 요구하는 동생 등 가족으로 인한 현실의 중압과 심리적 갈등의 고통이 전이되어 정신병리 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그는 망상분열 상태에서 거액의 가수표를 떼어주며 행복한 웃음과 백만장자로서의 재력을 과시한다. 이런 망상은 고통의 근원인 현실을 볼 수 없게 차단한다.
조만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병증 현상에만 집착하는 민 박사(의사)와 뒷일을 염려하는 윤지혜(간호사)의 생각은 '현실 복귀'와 '망상 속 안주' 중 어느 쪽이 행복한 것이냐는 물음을 던진다. 조만득은 정신을 되찾고 퇴원한다. 하지만 열흘 뒤 조만득은 어머니와 아우의 목을 졸라 죽이는 배타적인 공격성을 보여주고 자살을 시도한다.
이청준의 소설에는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이상 증상을 갖고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런 환자들과 접촉하고 치유하는 의사나 간호사의 등장도 빈번하다. 그런데 이청준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의사상이 철저하고 전형적이며 자기 확신적이고 단호한데 비해 간호사는 인간적인 양심을 보여주는 역할, 상처의 근원을 찾게 하는 역할이다.
에서도 치료에 집착하는 민 박사의 철저하고 의학적인 반응과 달리 간호사는 과학적 인식의 불완전성을 생각하게 하고, 의학의 일방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 문제를 제기한다. 여기에는 무의식으로 요구하는 간호상(像)이 담겨 있다. 조만득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해줄 사람이 아니라 겹겹이 닫혀 있는 마음의 문을 열어줄 사람이다.
의사는 병을 객관화하고 대상화해야 하지만, 간호사는 인간의 개별성을 긍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윤지혜의 주장이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를지라도 인간다움이라든가 행복의 추구 등과 같은 윤리적 진실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은 그 개별성에 있다. 소설이 인간의 개별성 위에 언어의 구조물을 쌓아가듯이 간호사는 인간에게 개별적으로 접근하여 치유를 지향해야 한다. 환자의 욕구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경청하기, 환자의 감정을 이해하고 필요한 것을 알아내 리드하기, 환자를 배려하면서 보살펴야 할 문제가 있는가 살피기 같은 치유가 새로운 리더십이다.
지금은 작은 것에 대한 성찰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는 나노시대이며, 개별적 특성을 인정하는 생명시대이다. 그래서 이청준은 를 통해 힘과 권력의 리더십이 아닌 진정성과 섬김의 리더십을 요구하나 보다. 조만득은 의학적 치료에 의해 현실과 자아로 복귀하지만 미친 것이 오히려 행복하며 현실의 자각이 훨씬 고통스러운 역설적인 상황이 된다. 시대의 병리를 암시하는 슬픈 이야기 속에서 조만득씨를 위로하며 우리의 위치를 찾아본다. 의료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도 환자의 고통을 세심하게 어루만져야겠다고. 지식과 기술이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을 때 진정한 치유가 시작된다.
가천대 외래교수, 간호사ㆍ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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