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역지도가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종래의 자유무역협정(FTA)은 선진국과 신흥국간 체결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간 FTA 네트워크 강화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진 경제권간의 발 빠른 FTA행보가 세계 무역판도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고 있다.
서방 선진경제권의 양 축인 미국과 EU는 지난달 FTA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이른바 범대서양자유무역협정(TAFTA)이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 15조6,096억달러로 단일 국가로는 세계 1위 경제규모. 유럽국가 연합체인 EU는 16조4,144억달러로 미국보다 더 크다. 전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하는 두 경제권이 단일시장으로 통합될 경우, 그 파장은 가늠키 조차 힘들다.
전문가들은 미ㆍEU간 FTA를 급성장하는 신흥국들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ㆍEU FTA가 체결되면 시장 규모도 어마어마하지만, 그 자체 새로운 국제무역의 게임 룰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기존 글로벌 스탠더드가 신흥개도국들의 도전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미국과 EU가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서진교 다자통상팀 선임연구위원은 "선진국과 개도국 간 이해 대립이 있는 상황에서 개도국을 견제하려는 하나의 포석"이라며 "개도국한테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EU와 FTA협상과는 별개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추진하고 있다. TPP에는 미국뿐 아니라 호주, 칠레, 뉴질랜드 등 12개 국이 참여하고 있다. 개도국도 포함하는 다자간 협정이란 점에서 미ㆍEU FTA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최근 일본의 합류결정으로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단일국가 기준 경제규모 1, 3위인 미국과 일본 간의 실질적 FTA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TPP는 미국의 최대 위협인 '중국 견제용 장치'란 해석이 유력하다. 개방이 미흡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해, TPP는 의도적으로 개방수준을 다른 FTA보다도 월등히 높였다는 지적도 있다. TPP는 원래 2005년 뉴질랜드와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등 4개국으로 출범했는데 미국이 2008년 뒤늦게 참가하면서 미국의 판이 되어 버렸다. 정부관계자는 "미국이 합류한 것 자체가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TPP 참가는 '중국 견제'라는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양국은 지난달 24일 공동선언에서 "서로에게 민감 품목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한다. 모든 관세를 일방적으로 철폐하도록 요구할 필요는 없다"고 명시했다.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일본을 끌어들이고자, 미국이 그 동안 지켜온 '성역 없는 관세 철폐'라는 원칙에서 한발 물러선 셈이다.
미ㆍEU FTA, 사실상 미ㆍ일 FTA가 된 TPP와는 별도로 일본과 EU간 FTA협상도 추진되고 있다. 양측은 지난해 말 경제연대협정(EPA) 추진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는데, 현재로선 EU보다 일본이 더 적극적이다. 협정 체결 시 '2020년까지 일본의 자동차 수출은 44만 3,000대 증가하는 반면, EU의 수출은 7,800대에 그치는 데다 최대 7만 3,000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나오는 등 EU보다는 일본이 거두게 될 이익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 동안 FTA에 미온적이었다. 때문에 고립을 자초하게 됐는데 지난해 아베 총리 취임 이후 종래의 폐쇄적 태도를 탈피, 적극적 대외개방정책으로 나가고 있다. 일본 내에선 장기불황타개를 위해선 개방을 가속화해야 하며, 이런 맥락에서 최근의 FTA강화는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해석되는 분위기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원 수석연구원은 "FTA뿐 아니라 각종 국제무역ㆍ투자협상에서 선진국끼리 뭉치는 경향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며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든 신흥국 전체를 견제하는 것이든 선진국 경제블록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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