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의 일이다. 처음 가는 전시장인데 그 전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아 전시작품을 배치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주최측의 말을 들은 터라 전시 효과 등에서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오후에 급한 일이 있어 일찍 서둘렀더니 오늘의 첫 입장이라는 환영의 말을 듣고 전시장에 들어섰다. 전시장 한 가운데에 긴 복도가 있고 그 좌우로 작품이 배치되었는데 복도의 길이가 상당하여 전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는 말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천천히 걸으며 보는데 저 멀리 어떤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속으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군!'하며 조금은 놀라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점차 그 사람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 사람에게서 느껴진 인상은 '작달막하고 다소 꾸부정한, 볼품없고 조금은 늙수그레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도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조금 더 가면 너무 가까워질 것 같아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더니 그 사람 역시 그쪽으로 왔다.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왼쪽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움직였는데 그 사람 역시 내가 가려는 방향을 그대로 따라 하며 계속 오락가락하더니 결국 부닥칠 뻔하였다. 조금은 짜증이 난 나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하는 눈빛으로 꼿꼿이 서서 그 친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그 사람은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자였다. 그는 바로 나였다. 전시장 입구에서 들은 오늘의 첫 입장이라는 안내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전시장을 넓게 보이게 하려고 전시장 한 가운데의 복도에 커다란 거울을 배치한 것인데, 그 거울에 비친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것이다. 어릴 적에 누군가가 나의 일상을 몰래 촬영해주면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짧게나마 본의 아니게 실현된 셈이다. 어쨌거나 조금 전에 얼핏 본 '작달막하고 다소 꾸부정한, 볼품없고 조금은 늙수그레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볼품없고 꾀죄죄한 중년의 모습인 나를 돌이켜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지금부터라도 운동 열심히 하고 헤어스타일도 젊게 바꾸어 볼까, 아니 화장품부터 바꾸고 새 옷을 살까 갈팡질팡했다. 그러다가 운동은 부지런해야 하고 새 옷과 화장품은 돈이 드는데다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일은 보통 결심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정확히 말해 깨달음이라기보다 상황은 벌어졌지만 대처할 방법은 없고 설령 방법이 있다 해도 돈과 노력, 용기(?)가 무한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체념했다는 것이 옳다.
그러나 체념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십 넘어 죽으면 요절이 아니라고 하니 지금 죽어도 요절은커녕 살만큼은 살았으되 해 놓은 것 없이 갔다는 비웃음만 들을 터라 마음 고쳐먹었다. 젊어 보이고 싶은 욕구, 남들 앞에서 '자랑질' 하고 싶은 속됨 등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젊음을 존중하는 서양문화에 비하여 동양에서는 늙음을 존중하였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동양에서 즐기고 누리는 등 현실의 욕심이 없어진 단계를 '노(老)의 경지'라 하여 높이 평가하였는데, 여기에서 노(老)란 늙었다는 현실적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원숙하고 존경 받을 만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나이가 많건 적건 남을 가르치는 사람을 '라오쓰(老師)'라 부른다. 젊음은 동양문화에서 미숙 또는 불완전함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전시장에서의 그 사건 이후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멀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늙음의 문턱 근처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 한 구석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편 어떻게 하면 품위 있는 노년을 맞이할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공자께서 70세가 되면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를 어기지 않았다'하셨는데 그 정도의 연륜이 되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고 또 그런 경지는 아무나 이를 수 없는 것임은 물론이다. 이래저래 생각하다가 먹는 것부터 줄여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이 먹어 식탐하는 것도 꼴불견인데다 돈도 안 드는 소식이야말로 누구나 추천하는 건강요법이니 말이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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