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해저드(moral hazardㆍ도덕적 해이)는 현실에서 실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화재보험 가입자는 실제 손실보다 보험금이 클 경우, 은연 중 보험금을 타먹으려고 화재 예방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 할 수 있다. 동일 임금체제에서 감독이 느슨하면 성실하지 않은 일꾼은 흔히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 의사가 의료보험금을 많이 타내기 위해 과잉진료를 하는 것도 전형적인 모럴해저드라고 할 수 있다.
■ 과거 국내 일부 기업들의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 역시 모럴해저드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다. 상환계획조차 없이 권력의 힘을 빌거나 뇌물을 써서 일단 막대한 빚(부채)을 끌어다 썼다. 마침내 빚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은행도 함부로 부도를 낼 수 없게 된다. 부도를 내면 은행도 함께 망하기 때문이다. 정태수 전 한보철강 회장 같은 이가 대출을 더 이상 해줄 수 없다는 은행장에게 "어디 한 번 할 테면 해보라"고 되레 큰소리 쳤던 것도 모럴해저드의 '대표선수'였기에 가능했다.
■ 모럴해저드는 통상 '정보의 비대칭'과 '감독 및 법적 책임추궁의 애매성'이 큰 상황에서 주로 발생한다. 화재보험사의 경우 일단 모든 가입자를 일일이 다 감독할 수 없고, 불이 화재예방에 대한 주의부족으로 발생했다고 해도 법적 책임을 묻기가 매우 어렵다. 과거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리먼브라더스 같은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이 휴지조각이 되기 십상인 증권으로 끝없이 '폭탄 돌리기'를 했던 것도 결국은 감독이 미치지 못했고, 위법성이 애매했기 때문이다.
■ 정부가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상환능력이 없는 한계 채무자의 채무를 감면해준다고 하자, 향후 구제조치를 기대해 일부러 빚을 갚지 않는 모럴해저드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부랴부랴 지난 2월말 기준 6개월 이상 연체자로 대상을 확정했는데도 연체율이 상승세라니 걱정이다. 고래심줄이 아닌 이상 은행 돈 떼먹기가 어디 그리 쉽겠는가. 본인 및 가족의 재산조사를 철저히 하고 채무 감면에 따른 신용 불이익도 감당키 어려울 테니, 완전히 망하지 않은 사람은 공연히 헛물켜지 않는 게 좋겠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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