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수학 문제를 끙끙대면서 풀고 있다. 할당된 분량을 끝내자 나는 빨간 펜을 들고 채점을 했다. 대체로 잘 했지만 두 문제를 틀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이는 화가 났다. 그 후로는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다. 쉬운 문제들은 손쉽게 빠른 속도로 풀었지만 후반부에 있는 어려운 문제를 앞에 놓고 끙끙 거리기만 할 뿐 풀려 하지 않았다. 아이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그때 내가 말했다."틀린 게 있으니 좋지 않니?" 아이는 황당해하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풀었냐고 혼이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있는데 좋은 일이라니 왠 말인가. 아빠가 정신과 의사라는데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더니 확실히 이상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지, 눈동자도 흔들려 보였다.
"다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빠 생각에는 백 점 맞은 시험지에서는 배울 게 없어. 다 맞출 수 있는 문제라면 왜 푸니? 그건 시간낭비야. 아빠는 네가 틀린 게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모르는 게 무엇인지 드디어 알게 됐으니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내 생각은 이랬다. 문제를 풀어본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무엇을 모르는지를 찾는데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해 확인하면 기분은 좋을지 모르고 불안감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다음 수준으로 발전은 어렵다. 달콤하기만 할 뿐 영양가는 없는 불량 음식 같은 것이다. 그래서 모르는 문제가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 부분이 내가 지금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 맞춘 다음에 선생님이 방향을 지시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보다 내가 모르는 것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짜 학습이다. 그러나 틀린다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틀린 것에 화를 내고 더 보고 싶어하지 않고 내가 잘하는 것, 잘 푸는 수준에서 만점을 받는 것에 머무르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더 우리는 더욱 의도적으로 틀렸다는 사실을 환영하고,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 아이에게 그렇게 받아들이게 가르쳐야 한다. 틀렸다는 사실은 내가 모르는 게 있는 부분을 알려주고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화가 나고 기분상하고 나의 무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제 뭘 해야 할지 알려주는 방향지시라는 것을.
모르는 게 있다는 것, 틀렸다는 것을 그래서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제 내가 뭘 해야 할지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시행착오를 넘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모르는 것을 알아가며 성장한다. 그런데, 요새 아이들부터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한다. 백 점만 칭찬받는 세상이라 그렇다. 그렇게 자라난 어른들의 사회도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기다려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적인 시도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니 어느 정도 성취를 하고 나면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된다. 어릴 때부터 실패에 대한 면역력이 길러지지 않은 덕분이다. 지금이라도 틀렸을 때 기뻐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언제나 백 점만 맞으며 자란 사람은 나중에 '한 방에 훅 가기' 쉽다. 하나라도 틀리면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다 맞을 수 있는 쉬운 문제가 아니면 도전하기를 주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들이 쌓이고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우리 사회는 전보다 관대해질 것이다. 틀린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그걸 인정할 수 있다. 또, 그걸 기반으로 고치는 노력을 한다. 실패는 더 큰 역경을 막아줄 예방주사다. 그게 안 되는 사회이기에 자기가 잘못한 것, 틀린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고 축소 해석하는 일만 늘어난다. 이런 부조리 해결의 첫걸음은 틀림을 기뻐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열을 내며 아이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눈만 멀뚱멀뚱이었다. 틀리고 기분이 좋을 리 없다는 얼굴. 갈 길이 참 멀다고 느꼈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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