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블룸버그 미국 뉴욕시장이 주도하는 10대 미혼모 근절 캠페인 포스터에는 눈물을 흘리는 아기 사진과 함께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할 가능성이 다른 아이보다 두 배 높습니다. 엄마가 10대에 날 가졌기 때문이죠.'
비만을 줄이기 위해 탄산음료 판매를 규제한 것처럼 원인 치료 정책에 능한 블룸버그 시장이 겨냥한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10대 미혼모의 희망적이지 않은 현실이 자식의 미래로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 10대 미혼모의 자식들이 부닥칠 현실 중 하나는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점인데 블룸버그 시장은 원치 않는 출산이 가져올 이런 사회적 비용까지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5%에 불과하지만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는 세계의 24%나 되는 세계 최대 범죄국가다. 그러나 블룸버그 시장과 같은 정책 입안자들의 고민 덕분인지 요즘은 범죄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뉴욕시와 수도 워싱턴만 해도 범죄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했고 살인사건 발생은 1990년대 이후 워싱턴이 80%, 뉴욕시는 75%가 줄었다.
미국 대도시는 1990년대 중반까지도 전쟁을 선포해야 할 만큼 범죄가 만연했었다. 이런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은 지금도 맨해튼에서 길을 잃어 할렘가로 자동차를 몰아야 했던 것을 아찔했던 경험으로 얘기한다. 하지만 1994년 갤럽 조사에서 미국인 최대 골칫거리였던 범죄가 작년 조사 때는 2%만 걱정할 만큼 현안에서 밀려나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조차 집권 당시 인구 증가로 범죄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범죄 감소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이 너무 많아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재미난 현상이다. 경제학자, 범죄학자, 경찰, 정치인, 인구통계학자까지 뛰어들어 귀가 솔깃한 얘기들을 하고 있다. 꼭 들어맞는 정답을 찾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지만 제2, 제3의 불룸버그 같은 인물이 많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지난 20년 간 수감자가 3배나 늘어난 걸 보면 거리의 범죄자들이 교도소로 간 것은 맞는 얘기다. 그 사이 경찰력이 늘었고 범죄자의 형량은 높아졌으며 가석방은 줄어들었다. 이를 지탱하는 대표적 주장이 경미한 범죄를 엄단하지 않으면 대형 범죄로 이어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뉴욕시 경찰이 이 이론으로 무장해 유명해졌지만, 엄벌주의와 범죄 하락의 인과관계가 생각만큼 뚜렷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경제성장 역시 범죄를 줄인 밀접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물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범죄가 줄어든 것은 설명하지 못하지만 경제적 풍요가 범죄 동기를 줄인 것만은 사실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범죄 하락 원인은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이 에서 주장한 낙태일 것이다. 1973년 연방대법원의 낙태 허용 판결로 원치 않게 태어나 범죄 환경에서 자라는 어린이가 감소한 것이 수십 년 뒤 범죄율 하락으로 나타났다는 논리다. 범죄율 하락의 시기와 정도를 예상할 수 없다는 맹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가 레빗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과학자들은 환경오염을 막으려고 자동차 연료에서 납을 제거한 1973년 입법 조치가 범죄율을 낮추었다고 한다. 어린이 뇌를 손상시켜 폭력 성향을 강하게 하는 납이 감소한 결과라는 것이다.
반쪽의 진실이긴 하지만 민간 보유 총기가 3억정 이상으로 늘어난 것과, 총기 휴대를 허용한 조치가 사람들의 두려움을 증가시켰고 결국 범죄율을 끌어내렸다는 주장도 있다. 비디오 게임, 포르노 합법화가 사람들을 컴퓨터 앞에 붙잡으면서 범죄 하락을 가져왔다는 연구 결과 역시 나와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주장들 가운데 어떤 것도 아직은 범죄를 하락시킨 정답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연적인 요소들과 의도적인 노력들이 합쳐진 결과인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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