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대통령 선거에서 최대 부족 출신인 우후루 케냐타(51) 부총리가 당선됐다. 그러나 경쟁 후보였던 라일라 오딩가(68) 총리가 개표 결과에 불복하고 있어 종족 간 유혈참사를 낳은 2007년 대선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케냐 선거관리위원회는 9일 케냐타가 득표율 50.07%를 기록, 43.31%에 그친 오딩가 등 다른 후보 7명을 앞섰다고 발표했다. 조모 케냐타 초대 대통령(1964~78년 재임)의 아들이자 케냐 최대 갑부인 케냐타는 과반 득표자가 없어 결선투표를 치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당선을 확정했다. 키쿠유족(전체 인구의 22%)인 케냐타와 루오족(13%)인 오딩가가 부족 간 제휴 경쟁을 하며 표가 양분됐다.
케냐타는 당선 연설에서 “정파를 넘어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반면 오딩가는 개표 시스템 오류로 무효표가 과다 집계되는 등 문제가 있었다며 “대법원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오딩가는 그러면서도 “폭력은 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다”며 지지층에 자제를 호소했다. 오딩가는 2007년 대선에서 키쿠유족인 므와이 키바키 대통령에게 패했는데 당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루오족을 키쿠유족이 폭력적으로 탄압해 1,200명이 사망했다. 케냐타도 이날 연설에서 오딩가를 “내 형제”로 칭하며 국정에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케냐타가 반인륜범죄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C)에 기소된 점은 또다른 불안 요인이다. 케냐타는 2007년 대선 폭력사태 당시 키쿠유족 폭력조직에 자금을 댄 혐의로 올해 7월부터 네덜란드 헤이그 법정에 선다. 그의 대선 러닝메이트인 윌리엄 루토 부통령 당선자 역시 관련 혐의로 ICC에 기소됐다. 뉴욕타임스는 “케냐타가 헤이그를 오가며 국가 통치와 무죄 변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할 판”이라고 전했다.
외교적 냉기류도 흐르고 있다. ICC 기소를 문제 삼아 케냐타와 거리를 둬온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대선 결과 발표 후 케냐타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채 “케냐 국민의 뜻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반영됐기를 바란다”고만 논평했다. 케냐를 역내 최대 우방으로 여겨온 미국, 케냐 몸바사 항을 수출입 통로로 삼아온 우간다와 르완다 등 인근 내륙 국가들은 특히 케냐의 정국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케냐타는 이를 의식한 듯 “책임감 있게 국제기구(ICC를 뜻함)에 협력하겠다”면서도 “국제사회도 케냐의 주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존중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각에는 케냐타가 자신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서방의 부당한 간섭으로 치부, 지지자를 집결시켜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