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CEO 팀 쿡이 지난해 받은 연봉은 420만 달러. 이중 140만 달러는 기본급, 나머지 280만 달러는 보너스였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으로 CEO직을 승계했던 2011년에는 무려 3억7,800만 달러나 받았는데, 이중 3억7,600만 달러는 주식이었다.
월가를 대표하는 골드만삭스의 블랭크 페인 CEO는 지난해 2,100만 달러를 벌었다. 기본급은 200만 달러였지만, 보너스가 1,900만 달러나 됐다. 이변이 없는 한 그는 월가 연봉 랭킹 1위가 확실해 보인다.
일본 소니의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은 2011년 CEO 재임 당시 기본급과 보너스로 2억7,000만 엔을 수령했다. 소니와 함께 일본 제조업을 대표하는 도요타 자동차의 도요타 아키오 CEO는 그 해 2,400만 엔의 보너스를 더해 총 1억3,600만 엔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과 일본 기업인들의 연봉을 시시콜콜 얘기하는 건, 그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받는지, 혹은 이 금액이 적정한지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CEO가 번 정확한 금액, 뿐만 아니라 기본급 보너스 현금 주식 등 세부내역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워서다.
사실 CEO 연봉과 내역은 공개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미국 CEO의 급여 내역은 증권관리위원회 보고사항이자 시장 공시 대상이고, 일본 역시 고액 연봉자(1억 엔 이상)는 공시 의무를 가진다.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비공개가 스탠더드다. 등기이사 전체에 지급할 연간 보수 한도가 주총 안건으로 공시되고, 결산보고서 역시 실제 지급 총액만 담길 뿐이다. CEO, 그리고 각 등기이사 개인이 받은 액수는 공개 대상이 아니어서 알 길이 없다.
CEO 급여에 대해 공개 의무를 두지 않는 '코리언 스탠더드'가 논란이 되는 건 스위스의 속칭 '살찐 고양이(배부른 자본가를 지칭)'규제법 때문이다. 연봉 높기로 유명한 스위스에서 CEO의 급여를 주주들이 정하도록 하자는 주민 발의가 이달 초 압도적으로 통과한 후, 현재 유럽 전역에선 같은 취지의 법률 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도 부자에 대한 거부 정서로 치면 세계 어디에 뒤지지 않는 터라, 살찐 고양이 규제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나는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 CEO가 많은 연봉을 받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직원 급여와의 형평성, 회사 사정, 국민 정서 등도 고려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높은 실적에 높은 보상이 따라가는 건 자연스럽다고 본다.
하지만 고액 연봉의 타당성이나 살찐 고앙이 규제 여부를 따지기 앞서, 우리나라는 연봉 자체를 모른다. 뭘 알아야 규제를 하든 옹호를 하든 할 텐데 기본 팩트조차 공개되지 않으니 더 이상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낡고 부끄러운 코리언 스탠더드가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선 CEO 연봉 공개 같은 류의 얘기만 나오면 반재벌ㆍ반시장으로 몰아붙이려고 하는데, 이건 그런 차원이 전혀 아니다. 주식회사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기업 형태이다. 주주가 주인이고 CEO는 대리인이란 사실은 주식회사 체제의 ABC다. 그런데 대리인이 얼마의 대가를 받는지 주인이 모른다면 오히려 그게 비정상이다. 주주들이 CEO 연봉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본주의적인 것이자 가장 시장적인 전제조건이라 믿는다.
복잡할 것도 없다. CEO를 포함해 등기이사 급여만 공시토록 하면 된다. 삼성전자로 치면 주주들이 알아야 할 건 오너이지만 이사 등재가 되지 않은 이건희 회장이나 이재용 부회장의 보수가 아니라, CEO인 권오현 부회장과 일부 등기임원의 급여란 얘기다. 물론 법제화로 풀어야 할 부분이라 삼성전자가 할 일은 아니지만.
다시 강조하지만 이건 반재벌ㆍ반기업 이슈가 아니라, 주식회사와 주주 자본주의의 기본에 관한 문제다. 거창한 경제민주화라 할 것도 없다.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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