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만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원장이 "실패의 가치를 아는 과학자"라며 이주진(61)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위원을 추천했다.
우리 사회는 인색하게도 실패의 경험이 성공의 초석이 됐다는 사실을 잘 기억해주지 않는다. 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30일 우리나라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Ⅰ)가 우주로 날아올랐을 때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기뻐하며 성공의 주역들을 주목했다. 하지만 수 차례 실패와 연기를 묵묵히 견뎌낸 이를 기억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위원은 1, 2차 나로호 발사 실패라는 무거운 짐을 안고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2011년 항우연 원장직을 내려놓았다. 비록 성공의 주역으로 주목 받진 못했지만, 나로호 발사 성공에는 분명 그가 기여한 부분이 적지 않다. 나는 이 위원을 나로호 성공을 가능하게 한 숨은 주역으로 기억한다.
이 위원이 항우연 원장에서 물러난 당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그를 초빙교수로 모시려고 했다. 그러나 이 위원은 아직 할 일이 남았다며 항우연에 남았다. 아마도 나로호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라면 수년 간 애정과 노력을 쏟아 부었는데도 나로호 실패의 책임을 져야 했던 항우연을 떠나고 싶었을 텐데 말이다.
이 위원을 처음 만난 건 2007년 건설교통부 생활교통본부장으로 일할 때였다. 도로의 교통 상황을 모니터링한 정보를 운전자에게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는데, 도로 밑에 일일이 센서를 설치하는 것보다 인공위성으로 한번에 사진을 찍는다면 예산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 이 위원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는 흔쾌히 직접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당시 항우연 위성총괄사업단장으로 일하고 있던 이 위원은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2호를 성공적으로 우주로 쏘아 올려 우리나라를 인공위성 분야 세계 7위권 국가로 올려놓은 주인공이었다.
우주기술에 대해선 문외한인 내게 이 위원은 초면임에도 관련 기술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해결방안까지 제시해줬다. 교통 상황을 상시 모니터링하려면 정지궤도위성과 저궤도위성이 모두 필요한데, 당시 우리나라 기술로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장기체공 무인기나 태양전지로 작동하는 성층권 비행체가 더 경제적이라는 것이었다.
비록 이 위원의 제안은 현실에서 이뤄지지 못했지만, 우린 그때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왔다. 우리 연구원의 미래 초고속철도 개발에 이 위원이 함께 참여하고 있으니 말이다. 언뜻 생각하면 철도와 우주기술이 별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시속 수백km로 달리는 고속철도를 만들 때는 공기역학적으로 우주비행체와 맞먹는 기술이 필요하다. 항공우주 기계공학 전문가인 이 위원의 조언이 우리 연구원에 큰 도움이 되는 이유다.
3차 발사에 나선 나로호가 나로과학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이 위원과 통화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순간 그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마냥 좋아했다. 자신에게 공이 돌아오지 않아도 수년 간 심혈을 기울였던 나로호가 제 임무를 다했다는 사실만으로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게 수화기 너머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누구의 공인지를 따지기보다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내 일처럼 여기고, 실패에 좌절하거나 체념하기보다 과정과 결과에서 모두 의미를 찾는, 바로 이런 게 순수한 과학이다.
성공은 실패를 딛고 일어난다. 성장발전 과정에서 실패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잊혀진 사람들을 우리 사회가 격려해야 하는 이유다. 이 위원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정리=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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