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8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남북 불가침 합의 무효를 선언하면서 또다시 위협 수위를 한 단계 높였다. 북한은 지난달 3차 핵실험을 앞두고도 단계적으로 위협 공세를 강화한 전례가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추가 도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북한이 이날 거론한 불가침 합의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뜻한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을 앞둔 2009년 1월 불가침 합의 폐기를 공언한 지 4년 만에 같은 카드를 꺼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걸핏하면 비핵화 문제를 들먹이는데 비해 남북 간 불가침 합의는 좀처럼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성명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대남 위협의 강도를 최고조로 높이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앞서 5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고, 7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에서는 '제2의 조선전쟁', '핵 선제타격'을 거론했다. 8일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 2094호 채택 전후에 한국과 미국 양국을 겨냥해 수위를 높이며 릴레이 위협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
7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을 자행했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포병부대를 찾아 전면전 준비를 지시한 것은 일련의 과정이 자신의 리더십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알리려는 상징적 제스처로 풀이된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군부, 외무성, 조평통이 번갈아 가며 충성 경쟁을 하듯 위협성명을 쏟아내고 있다"며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김정은 1위원장의 영도력을 부각시키려는 계산"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지난 1월 하순 이후의 상황과 흡사하다. 북한은 지난달 3차 핵실험에 앞서 '유엔 결의에 반발→위협 성명 충성 경쟁→김정은 리더십 부각→추가 도발 감행'의 패턴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에도 유사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1월 23일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 결의안 2087호를 채택하자 즉각 외무성 성명을 내고 '비핵화 포기'를 선언했다. 이어 24일과 25일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와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잇따라 성명을 내고 '높은 수준의 핵실험'과 '강력한 물리적 대응 조치'를 공언했다.
북한은 1월 26일 '국가안전 및 대외 부문 일꾼협의회'라는 이례적인 회의가 열린 소식을 전하면서 김 1위원장이 "국가적 중대 조치를 취할 단호한 결심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특히 김 1위원장이 회의에서 당·정·군의 주요 인사들을 모아놓고 뭔가를 지시하는 듯한 사진을 공개하며 김 1위원장 주도로 일련의 도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후 보름여가 지난 2월 12일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 같은 전례로 볼 때 북한이 앞으로 위협 성명을 수 차례 더 발표하고 김 1위원장의 리더십을 주민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켜 분위기를 고조시킨 뒤 국지 도발 등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은 서해 NLL에서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거나 김 1위원장의 중대 결심을 또다시 강조하며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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