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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사고' 겉핥기만 하는 한국 출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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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사고' 겉핥기만 하는 한국 출판가

입력
2013.03.08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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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3월 11일에 맞추어 지진 피해와 원전 사고를 다룬 책들이 연례행사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는 지진 피해 현장을 르포한 책들이 주류였다. 사고 2주년을 맞은 올해는 지진 관련 책은 거의 없고, 현재진행형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주제로 한 책들이 다수다.

새로 나온 책 가운데는 역사학자 한홍구(성공회대), 재일동포 서경식(도쿄게이자이대),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의 몇 차례 좌담을 모은 (반비 발행), 후쿠시마 원전 주변 미나미소마시에서 사고 후 피난을 거부하며 살고 있는 스페인사상사학자 사사키 다카시의 블로그 글을 모은 (돌베개) 정도가 눈에 띈다. 전자는 탈핵과 평화의 논리를 한일관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일본 평화헌법과 천황제 등 다양한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풀어간다. 사사키의 책도 원전 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구체적인 재난 체험을 담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왜 일어난 것이며, 사고 대응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으며, 무엇이 잘못 된 것인지 하는, 이 사고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짚어주는 책이 없다. 피해 당사국인 일본에서는 이런 문제를 다룬 책들이 이미 여러 종 나와 있다. 일본 소설은 신간이 나오는 족족 번역해대면서도, 이런 책은 돈 안 된다고 깡그리 외면하는 한국 출판사들의 장사꾼 정서가 부끄럽고 안타깝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려대출판부가 지난해 일본 와세다대출판부에서 낸 '지진재해 이후를 생각하다' 총서 등에서 골라 최근 낸 '동일본대지진과 핵재난' 소책자 시리즈 13권 중 한 권으로 라는 책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저자인 마쓰오카 ??지 와세다대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대응과정의 검증과 안전규제에 대한 제언'이라는 부제를 단 책에서 '대지진은 자연재해이지만 원전 사고는 분명한 인재'라며 '정계와 정부, 산업계, 대학, 언론이 만들어낸 폐쇄적이며 비합리적인 '원자력집단'이라고 하는 일본 사회의 병리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후쿠시마의 경우 우선 원자로의 상태와 방사성물질의 방출량 등 중대사고의 진전상황을 해석하는 비상시스템이나 방사능영향예측 네트워크 같은 대책들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거나 어느 정도 가동했는데도 관련 기관이 이를 감추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원전 국가와 마찬가지로 일본은 원전 안전 규제기관으로 경제산업성 아래 원자력안전ㆍ보안원과 독립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라는 이중의 통제ㆍ감시 조직을 운영한다. 하지만 원자력안전ㆍ보안원은 '어느 정도의 기술적 능력은 갖추고 있었으나 그러한 기술적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독립성과 사회적 능력'이, 원자력안전위는 '정부에 적확한 조언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했다고 지적했다. 입으로는 이중 규제를 외치면서도 실제 사고 상황에서는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원자력안전위는 권고나 조언 기관에 불과하고 실제 규제는 원자력 개발관청인 경제산업성 자원에너지청의 원자력안전ㆍ보안원 일원화 체제라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저자는 '일본 사회가 원자력발전을 계속하든 중지하든 현재 보유하고 있는 54기의 상업발전용 원자로도, 거기서 나오는 방사성폐기물도 바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규제강화대책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사정이 한국이라고 다를 리 만무하다.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해 일본의 실패 경험을 낱낱이 담은 일본 정부, 민간, 도쿄전력, 국회 각각의 사고조사 보고서를 하루빨리 번역해 내야 한다. 그리고 또 나와야 할 책으로 마쓰오카 교수도 언급하고 있는 아사히신문 연재 후 출간된 (이와나미서점), 언론인 출신 변호사 히즈미 가즈오 등이 쓴 (가켄), 시사주간지 기자였던 오시카 야스아키가 정리한 (고단샤) 등이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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