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한번 진로를 정하면 '회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원칙을 중시하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안 대치 사태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의 정치 행위를 두고 원칙보다는 야당의 백기를 요구하는 압박에 치우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오는 11일 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된 장관 후보자 7명(류길재 통일부ㆍ황교안 법무부ㆍ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ㆍ진영 보건복지부ㆍ윤성규 환경부ㆍ방하남 고용노동부ㆍ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임명장을 수여하고 이들과 부처 현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지난달 27일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지 8일만이다. 언제든 이들을 임명할 수 있었던 박 대통령의 늑장 임명을 두고 국정 파행을 부각시켜 야당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청와대는 11일에도 청문회 문턱을 넘은 윤병세 외교부ㆍ서남수 교육부ㆍ유정복 안전행정부ㆍ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조직개편 대상인 만큼 "현재의 정부조직법으론 임명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하지만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은 현 직제대로 '대통령실장' '경호처장'으로 편법 임명한 것과는 상반된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위법 논란 소지에도 불구하고 6일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에게 화학물질 사고 대책 수립을 지시하고서도 정작 '후보자' 꼬리표를 떼주지 않았다.
국무회의를 2주째 열지 않는 것도 대야 압박 정치로 해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청와대 설명대로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자체가 안 된 상태여서 이명박정부 장관들과 함께 국무회의를 소집하는 게 실익이 없는 측면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도 대통령ㆍ총리와 15인 이상 국무위원만 있으면 열 수 있는 국무회의를 11명의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한 지금에도 "국무위원도 부족하고 떠날 장관들은 퇴임식 준비 중이어서 무리가 있다"는 청와대의 설명은 군색하다. 특히 경기 침체와 안보 위기 상황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가의 최고심의기구인 국무회의를 표류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박 대통령의 공식 일정에 공란이 많은 것도 무언의 시위로 보는 시선이 있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 등을 통해 자신만의 '충정의 마음'을 강조하고 야당의 퇴로를 사실상 차단한 것도 설득과 조정에 나서야 할 대통령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민주통합당은 "박 대통령의 전략적 태업과 고집이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박용진 대변인은 "대통령이 현안이 산적한 국무회의를 무산시키고 국무위원도 임명하지 않는 것은 자해적 정치행위로 민생과 안보를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최악의 정치"라고 맹비난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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